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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오퐁 &#187; Movi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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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Pop+Kitecture(Pop+Architecture) Magazine 팝키텍쳐 매거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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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220;굿바이 보이&#8221; 를 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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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Jun 2011 00:00:33 +0000</pubDate>
		<dc:creator>leopon9</dc:creator>
				<category><![CDATA[Movie]]></category>
		<category><![CDATA[거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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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우는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잘 살았을까? &#8211; 이지은 @enjoypresent 내 인생 첫번째 독립영화, 첫번째 GV(Guest Visit) 인정..인정…!!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진우 뒤에 보이는 아파트와 새로 닦인 아스팔트길을 보며 요 근래 어떤 상업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명확한 메시지’를 봤다는 사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얼마전 종로구 창신동(서울 성곽에 인접한)을 대상지로 도시설계 논문을 쓰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6.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6-tm.jpg" width="375" height="536" alt="goodbyeboy06.jpg"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7.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7-tm.jpg" width="375" height="536" alt="goodbyeboy07.jpg" /></a></p>
<p style="font-size:10px;color:#70440d;text-align:right;">[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p>
<h5 style="margin-bottom:0;">진우는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잘 살았을까?</h5>
<div style="padding:0 0 50px 50px;font-size: 0.9em;">
  &#8211; 이지은 <a href="http://twitter.com/enjoypresent" target="_blank">@enjoypresent</a>
</div>
<p>내 인생 첫번째 독립영화, 첫번째 GV(Guest Visit)</p>
<p>인정..인정…!!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진우 뒤에 보이는 아파트와 새로 닦인 아스팔트길을 보며 요 근래 어떤 상업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명확한 메시지’를 봤다는 사실.</p>
<p>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얼마전 종로구 창신동(서울 성곽에 인접한)을 대상지로 도시설계 논문을 쓰며, 살짝 ‘낭만적인’,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그런 동네를 보게 되었고 그 때의 경험 때문에. 길거리에 나와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노인들, 그곳을 지나가는 아기 엄마, 텃밭 옆 작은 야외공간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 뭔가 아파트에서 삭막하게 사는 나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뭔가 다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듯해 보여 지구단위계획의 이상향처럼 생각했었다.</p>
<p>&lt;굿바이 보이&gt;는 그런 나의 뒷통수를 쳤다. ‘이게 니가 말한 커뮤니티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야…그것도 네가 중고등학교때 최루탄 냄새에 짜증내며 아메리카나-아시는 분 계실라나?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 에서 콜라를 마시던 너랑 같은 시대를 살던 진우라는 아이의 모습이라구…’ 창근이가 맞던 장면은 내가 본 그 어떤 영화보다 잔인했다.(&lt;쏘우&gt;, &lt;스승의 은혜&gt;, &lt;호스탈&gt;…) 너무 현실감 있어서…나에게까지 그 피가 튀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이런 잔인한 장면이 없는 ‘아메리카나’로 가고 싶었다. (창근이역 맡은 배우와 매우 닮은 분을 알고 있어, 더더욱 실감났던 장면이다.)</p>
<p>이 영화에서 공간에 대한 해석은 그저 ‘아파트는 나쁘고, 산동네의 삶은 소중하다’ 라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것 이상을 담고 있는듯 하다. 도시계획학, 건축학, 조경학에서 배우는 지식이 아닌, 실제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에게서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 해석이라서 더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도시계획에서는 ‘주민참여,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들을 참 많이 한다. 물리적 재개발/재건축의 시대에서 주민이 주체로 자신들의 삶터를 가꾸고 보살피도록 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lt;굿바이 보이&gt;는 뭔가 그 중간 쯤에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삶이 살고 있는 공간에 지배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의 방이 생긴 진숙에게 돌아온 아버지는 방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화를 내던 진숙의 모습, 고기 냄새를 맡고 모여든 이웃사람들의 모습…</p>
<p>진우는 새로 이사간 동네에서 잘 살았을까? 노홍진 감독님의 대답은, &#8220;진우는 커서 감독이 되었겠죠&#8221; 였다. 감독님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었다는데, 난 진우가 정말 행복한 감독이 되었기를 바란다.</p>
<h5 style="margin-bottom:0;">유년기의 끝을 보다</h5>
<div style="padding:0 0 50px 50px;font-size: 0.9em;">
  &#8211; 이연경 <a href="http://twitter.com/aoikasa27" target="_blank">@aoikasa27</a>
</div>
<p>1. 가슴이 먹먹. 내겐 가장 강렬했던 마지막 씬.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마치 유토피아인 듯 하지만, 그 이후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뿌연 하늘만큼이나 가슴 먹먹해지게 만들던 엔딩. 어릴적 서울 변두리 주택가를 떠나 강남 아파트 단지로 들어설때 느낀 감정이 떠오른다. 그 순간이 아마 내겐 유년시절의 끝이었던듯.</p>
<p>2. 대공원과 행복한 가족. 80년대 후반이었던가 90년대 초반이었던가. 서울대공원이 처음 개장했던 때 쌀쌀한 날씨에 코끼리열차를 타고 떨던 기억이 난다. 대공원에서는 모두가 행복한 가족인듯 보이지만, 그건 일시적인 판타지이지 않을까. 단 하루라도 그 판타지 속에 들어가고팠던 아버지의 애절함이 느껴지던 장면.</p>
<p>3. 일상. 일상을 얘기한다는 건 어찌보면 시적이고 현상학적이고 노스탤지어적이지만. 일상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봉인된 기억들이 해제되며 아프다는 걸…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걸… 알려준 영화</p>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1.jpg" width="750" height="500" alt="goodbyeboy01.jpg" /></p>
<h5 style="margin-bottom:0;">네 개의 껍질, 네 개의 공간</h5>
<div style="padding:0 0 50px 50px;font-size: 0.9em;">
  &#8211; 류성헌 <a href="http://twitter.com/zingu99" target="_blank">@zingu99</a>
</div>
<p>나는 어린 시절, ‘낯선 스케일&#8217;을 처음 접한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으로 3.1 빌딩을 올려다 봤을 때, 잠수교 2층에 짓고있던 반포대교를 봤을 때, 혹은 조선소를 방문하여 건조 중이던 유조선의 끝없는 길이를 봤을때 뭔가 껍질을 한번씩 깨나가며 성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경험은 고도 4천미터 천산산맥을 처음 봤던 작년에도 같았다. 사람이, 특히 아이가 낯선 환경을 접할 때의 자극만큼 의식을 환기시키고 성장시키는 촉진제는 없으리라.</p>
<p>&lt;굿바이보이&gt;는 80년대를 관통하는 한 소년의 성장 영화다. 그리고 소년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도시와 교감하며 서울과 함께 성장한다. 이 글은 영화의 큰 줄기에서 소년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몇 개의 도시공간을 중심으로 아이의 성장과정을 풀어본다. 줄거리상의 중요함 보다는 아이와 공간간의 관계에 촛점을 맞춰보았다. 그리고 그 변화의 단계는 우리 도시의 성장사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성장사이기도 하다.</p>
<p>소년기 진우의 공간은 집에서 출발한다. 세 칸의 방과 작은 마당을 가진 언덕배기 단층집. ‘빨갱이 뒷방누나’의 방과 아빠의 방, 그리고 엄마, 누나, 진우의 방. 이렇게 세개의 방은 철저히 독립적인 공간으로 단절되어 있고 마당을 통하여 서로가 얼굴을 마주하고 갈등하듯 연결되어 있다. 도시가 광역적 개념에서 보면 한채의 집처럼 사적공간, 공적공간, 위생공간, 휴게공간등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 채의 집에서도 도시구조가 존재한다. 진우의 집에서 방은 철저히 개별화된 구성원들이 거주하는 ‘구역’이고 각 구역간의 소통은 사회적 갈등으로 단절되어 있다. 구역들은 하나의 ‘광장’으로 유일하게 연결되어 소통될 뿐이다. 그 시대 많은 이웃의 작은 ‘도시’들도 진우네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80년대였다. 가족에게 애정 표현 할 방법을 모르던 가장들. 88올림픽을 향하여 총폭탄의 정신으로 달려가던 사회와 그 무게를 뚫고 폭발 하려는 엄청난 에너지가 땅속에서 꿈틀대던 80년대.</p>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5.jpg" width="750" height="500" alt="goodbyeboy05.jpg" /></p>
<p><font color="#67C5FC">첫번째 껍질 &#8211; 신문보급소</font></p>
<p>그 시대의 서울 산비탈 한 서민 가정에서 성장하던 아이가 집이라는 껍질을 깨고 만나는 공간은 신문보급소를 통해 달리는 골목길이다. 세상’밖으로’ 나가려는 아이에게 신문은 여권이었고 신문보급소는 그곳으로 향해있는 공항이었다. 이전에 존재하던 골목길과 폭도 같고 모양도 같지만 신문을 들고 만나는 골목길은 진우에게 전혀 낯선 공간이다. 서민 아이들에게 아크로폴리스 언덕으로 비춰졌던 삼익빌라에서 진우는 같은학교 아이들에게 조차 그저 ‘어이~ 동양일보’일 뿐이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계급적 모멸감을 느낀다. 그리고 좁은 막다른 골목에서 시위학생들을 마주치고 백골단의 곤봉에 피흘리며 끌려가는 ‘뒷방누나’를 보며 이 사회가 뉴스에서 보던 대머리 아저씨의 평화롭기만 한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p>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3.jpg" width="750" height="500" alt="goodbyeboy03.jpg" /></p>
<p>신문보급소의 멘토 창근이는 진우의 눈에 이미 ‘세상밖으로’ 탈출에 성공한 듯 비춰진다. 이태원 가판대에 빼돌린 신문을 유통시키는 창근을 보면서 진우는 또하나의 껍질을 깬다. 난생 처음 보는 창근이의 ‘자력갱생’ 현장, 이태원 골목길에서 진우는 어른이 되어 간다. 그리고 세상 밖에서 변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대면하게 된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독하게 이 악물고 술집에 나가는 엄마. 가발을 쓰고 이태원을 활보하는 누나의 모습, 그리고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인생을 풀어헤치고 집을 나가버린 아빠의 모습에서 진우는 단지 벽으로만 존재했던 가족의 단절을 느슨한 해체의 전조처럼 느끼면서 불안해 한다.</p>
<p><font color="#67C5FC">두번째 껍질 &#8211; 계단</font></p>
<p>이 두번째 껍질 밖에서 중요한 공간이 계단이다. 계단은 수직적인 이동수단이면서 관계 속의 위계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실제로 독일 현대 무대미술의 대가였던 아돌프 아피아는 모든 사실적인 무대장치를 배격하고 계단과 조명만으로 무대를 구성하기도 했었다. 산비탈 집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마지막 고난의 가파른 계단. 그곳에서 진우는 술취한 누나에게 통닭을 받아들고, 일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던 엄마는 북받히는 슬픔에 주저앉는 등 많은 상황들이 수직공간(계단)을 이동하는 동안 보여진다. 수평적 공간에서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p>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4.jpg" width="750" height="500" alt="goodbyeboy04.jpg" /></p>
<p><font color="#67C5FC">세번째 껍질 &#8211; 자동차</font></p>
<p>세번째 껍질은 다가올 90년대를 암시하며 진우에게 다가온다. 바로 자동차. 자동차는 진우의 세번째 껍질을 깨는데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된다. 일년만에 집에 돌아온 아빠는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여의치 않자 자동차에 진우와 진숙을 태우고 놀이동산으로 향한다.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울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물론 대부분 서울에 국한되긴 했지만) 주식이 폭등하고 가구소득이 높아졌으며 그로인해 자동차 보급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모든 면에서 미국인의 그것과 비슷해 지는것이 국가적 목표였던 80년대 많은 가정이 자동차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비록 빌린 것이지만 자동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놀이동산을 간다는 것은 평생 아빠로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뿌듯한 노력이었으리라. 그러나 뒤늦은 노력은 아빠에게 더 큰 자괴감만을 남길 뿐이었다. 동네어귀 공터에 세워둔 자동차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이미 세번의 껍질을 깬 진우는 소년기를 벗어나고 있었고 자신의 상황을 담담히 이야기하며 아버지에게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말한다. 나는 이 세상 모든 아들들은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이겨야 하는 오이디푸스라고 믿는다. 아버지를 쓰러뜨린 아들은 또다시 그의 아들에게 쓰러지리라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개인으로서의 아버지도 그렇고 집단으로서의 한 세대도 그렇다. 먼 훗날 아들을 더 큰 세상으로 보내줄 자동차 안에서 자식의 성장을 확인한 아빠는 씁쓸한 행복을 느끼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p>
<p><font color="#67C5FC">네번째 껍질 &#8211; 산동네</font></p>
<p>아빠의 죽음은 아이러니하게 가정의 불확실성을 해소하였고 남은 가족은 안정을 찾아 모두 함께 산비탈 동네라는 공간적 껍질, 80년대라는 시대의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간다. 80년대 말 발표된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은 서울 근교 농지를 아파트 숲으로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광복이후 사대문의 껍질을 깨고 한강까지 팽창했던 서울은 70년대 강남개발로 한강의 껍질을 깨고 또 한번 빅뱅을 맞이하였고 90년대 초반 신도시 개발로 시 경계라는 껍질마저 허물며 수도권이라는 이름의 더 큰 팽창을 맞이하게 된다. 진우 가족의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언덕너머 멀리 아파트 숲이 보이는 내리막길로 질주할 때 진우는 소년기와 이별하고 세상은 80년대와 이별하고 서울은 90년대 이후 도래하는 민영 아파트 시장의 황금기를 향해 달려간다.</p>
<p>진우는 모두 네번의 껍질을 깨고 ‘굿바이보이’하였다. 네번의 껍질 모두 진우에게 아이로써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망가지고 상처나고 딱지가 앉고 떨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진우는 소년기를 떠나보냈다. 그저 키가 크고 몸집이 커져서 어른 옷을 입는다고 어른이 되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보듬어 가지 못하고 단지 보여지는 곳에 예쁜 옷만 입혀준다고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진우의 시대에서 이십여년이 흐른 지금, 서울은 여전히 어른 양복을 입고 방황하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시대에 죄스러운 마음에 먹먹해진다.</p>
<h5 style="margin-bottom:0;">사소한 기억일수록 그리움이 깊다</h5>
<div style="padding:0 0 50px 50px;font-size: 0.9em;">
  &#8211; 주현돈
</div>
<p>멋진 제목!!! 영화제목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혹은 영화의 내용과 어울렸던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p>
<p>개고기를 끓이는 솥에 구역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 그렇게 시작한 진우의 유년기.<br />
진우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기억이겠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유쾌한 출발이었다.</p>
<p>나이가 들면서 소년이었던 시절을 점점 잊어가고 그렇게 살아가다 문득 어렸을 때의 조그마한 기억이라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면 너무 멀리왔다는 생각과 그리움을 느끼며 회상에 잠기게 된다. 특히 어릴 적 기억 중에서도 아주아주 사소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일이 기억날 때 더 깊은 그리움에 빠지는 것 같다. 마지막 친구와 헤어질 때 보이던 아파트 풍경과 계속 쫓아오던 친구에게 라이터를 던지는 진우를 보면서 &lt;굿바이 보이&gt;는 어릴 적 기억, 아주 작은 부분까지 기억나게 해주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p>
<h5 style="margin-bottom:0;">80년대와 지금 우리</h5>
<div style="padding:0 0 50px 50px;font-size: 0.9em;">
  &#8211; 이승연
</div>
<p>&#8216;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8217; 라는 질문에 답할 수는 없지만, 삶의 나이테를 한 줄 씩 늘려가면서 같은 여자로 살아온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된다. 단순히 머리로 하는 이해가 아닌 사회적 구조 속에서 피부로 다가오는 삶의 형태에 대해서 말이다. 아버지 경식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극도로 미워하기만 하는 누나 진숙에 비해, 비록 이해할 수는 없지만 철부지 아버지를 미워하지도 못하는 아들 진우를 보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딸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진우는 엄마를 좋아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고, 진숙은 엄마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려는 듯이 보였다.</p>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odbyeboy02.jpg" width="750" height="500" alt="goodbyeboy02.jpg" /></p>
<p>나는 80년대의 역동적인 사회 속에서 자라지 않았기에 그 시대적 불운과 부조리함을 가슴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감독이 담고자하는 그 시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영화를 보는 내내 노력했다.<br />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에서부터 관계는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감독은 그 시대의 부조리함을 하나하나 드러냄으로써 21세기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과거 80년대 진우와의 연결고리를 찾아주려고 했던 것을 아닐까 생각해 본다.<br />
이전세대의 삶이 조명되고 과거를 이해하려는 신세대의 작은 관심이 모인다면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세대 간 대화가 요원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 이런 바램을, 감독은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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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터가 스시를 좋아하는 이유, [인 굿 컴퍼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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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6 Jul 2010 00:18:49 +0000</pubDate>
		<dc:creator>leopon9</dc:creator>
				<category><![CDATA[Movie]]></category>
		<category><![CDATA[자본주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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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20;인 굿 컴퍼니&#8221;   이 영화의 제목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과연 좋은 직장일까? &#8216;좋은 회사&#8217; 란 무엇을 만족시켜주는 곳일까?  문어발 식으로 확장해 나가는 다국적 기업의 젊은 직원 카터는 회사에서 새로 인수한 스포츠 매거진의 구조조정을 위해 파견된다. 20대의 젊은이가 한 순간에 한 회사의 보스가 되어 암행어사 처럼 나타난다. 카터의 주요업무는 사람의 모가지를 자르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0/07/ingoodcompany.jpg" width="350" height="518" alt="ingoodcompany.jpg" /></p>
<p>&#8220;인 굿 컴퍼니&#8221;   이 영화의 제목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돈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과연 좋은 직장일까? &#8216;좋은 회사&#8217; 란 무엇을 만족시켜주는 곳일까? </p>
<p>문어발 식으로 확장해 나가는 다국적 기업의 젊은 직원 카터는 회사에서 새로 인수한 스포츠 매거진의 구조조정을 위해 파견된다. 20대의 젊은이가 한 순간에 한 회사의 보스가 되어 암행어사 처럼 나타난다. 카터의 주요업무는 사람의 모가지를 자르는 일이다.   멀 쩡한 회사를 날로 집어삼키고 기존의 조직체계를 회 치는 일. 이른바, &#8220;구조조정&#8221; 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지금의 자본주의 시장의 현실을 보여준다. 희망을 품고 대양을 헤엄치던 물고기가 어부의 망에 걸려 산 채로 요리사의 칼날에 난도질, 어느 도시의 식탁 위에서 와사비 풀린 간장 고문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냉험한 현실과 뭐 다를게 있겠는가! 카터가 회 치듯 잘라내는 사람들은 어제까지 회사를 위해 일했고 앞으로도 한 가족의 가장이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가 속한 기업과 그의 업무가 &#8216;스시&#8217; 라는 요리처럼 잔인하다는 점에서 통하고 있다.</p>
<p>카터의 방, 어항 속에는 물고기, 버디가 산다. 버디의 이야기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어항 속에는 원래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버디가 다른 한 마리를 잡아먹고 혼자 남아 &#8216;외로운 물고기&#8217; 가 된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사람마다 몸 값을 매기고 흥정해야 하는 참담함이며, 정든 동료를 떠나보내면서 배신자로 내몰려야 하는 상황, 비겁한 자신에 대한 분노 등&#8230;. 아마도 물고기 버디는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메타포가 아닐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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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위대한 침묵]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한, 관객과의 대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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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6 Dec 2009 03:04:26 +0000</pubDate>
		<dc:creator>leopon9</dc:creator>
				<category><![CDATA[Movie]]></category>
		<category><![CDATA[건축가]]></category>
		<category><![CDATA[루이스바라간]]></category>
		<category><![CDATA[수도원]]></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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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난 12월 2일 오후 7시, 씨네코드 선재 극장에서 건축가 승효상씨와 함께하는 < 위대한 침묵>특별 상영회가 있었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진행된 간담회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을 중심으로 절제를 주제로 하는 수도원 건축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역사적 소개와 공간구성,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 루이스 바라간의 절제된 건축 등 수도원 건축에서부터 폐쇄수도원의 정의, 절제를 주제로 하는 건축언어에 이르기까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object width="600" height="450"><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movie" value="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7992039&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ff9933&amp;fullscreen=1" /><embed src="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7992039&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ff9933&amp;fullscreen=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 width="600" height="450" /><br />
</object></p>
<p>지난 12월 2일 오후 7시, 씨네코드 선재 극장에서 건축가 승효상씨와 함께하는 &lt;위대한 침묵&gt;특별 상영회가 있었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진행된 간담회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을 중심으로 절제를 주제로 하는 수도원 건축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p>
<p>영화에 등장하는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역사적 소개와 공간구성,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 루이스 바라간의 절제된 건축 등 수도원 건축에서부터 폐쇄수도원의 정의, 절제를 주제로 하는 건축언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p>
<p>&lt;위대한 침묵&gt;이 건축을 주제로 한 영화라고 할 순 없지만 영화를 빌어서 르 코르뷔지에와 루이스 바라간이 조명될 수 있었다는 점은 흥미로웠다. 영상을 통해 간담회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봤다.</p>
<p>(영화를 위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건축 자체만을 다루었던 점은 아쉽다. 영화&lt;위대한 침묵&gt;이 수도원 건축을 인식하고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 수 있는지, 건축을 중요한 모티브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강한 의문이 남는다. 영화 간담회에 건축가가 초대되고 건축이 주제로 다뤄졌다는 점은 고무적으로 받아들이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 건축적인 해석이 담길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는 미지수다. &lt;위대한 침묵&gt;에 대한 리뷰는 다음 포스트를 통해 소개하도록 하고 일단 수도원 건축에 대해 들어보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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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은모의 파주, 중식의 파주, 박찬옥의 [파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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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0 Oct 2009 23:17:22 +0000</pubDate>
		<dc:creator>leopon9</dc:creator>
				<category><![CDATA[Movie]]></category>
		<category><![CDATA[도시(Urban)]]></category>
		<category><![CDATA[박찬옥]]></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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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인터뷰]]></category>
		<category><![CDATA[장소성]]></category>
		<category><![CDATA[제목]]></category>
		<category><![CDATA[파주]]></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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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영화의 제목, "파주". '파란의 러브스토리' 와 파주라는 도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영화를 만든, 박찬옥 감독은 중식(이선균 분)과 은모(서우) 두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파주라는 도시에 배치시켰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파주가 끼어든 이유가 무엇이지....박찬옥 감독의 < 파주>는 '파란의 도시' 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도시를 무엇으로 기억할 것이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paju.jpg" width="400" height="570" alt="paju.jpg" /></p>
<p>이 영화의 제목, &#8220;파주&#8221;. <strong>&#8216;파란의 러브스토리&#8217; 와 파주라는 도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strong> 영화를 만든, 박찬옥 감독은 중식(이선균 분)과 은모(서우) 두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파주라는 도시에 배치시켰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파주가 끼어든 이유가 무엇이지 생각해 보자.</p>
<div style="height:30px"></div>
<p><span style="font-size: 14px;"><span style="color: #795313;"><strong>은모의 &#8220;파주&#8221;</strong></span></span></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paju02.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paju02-tm.jpg" width="150" height="150" alt="paju02.jpg" style="float:left; margin-right:20px; margin-bottom:5px;" /></a></p>
<p>영화는, 고향 &#8216;파주&#8217;로 돌아오는 은모(서우 분)를 비추면서 시작한다. 어둠이 내린 도시, 떠나기 전의 그 곳은 없고, 온통 유흥가로 변해버린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8220;개발되기 전에 유흥가가 먼저 들어서는 이유가 뭔지 알아?&#8221; 택시 운전사가 말을 건낸다. 그렇다. 은모의 파주는 개발의 그림자 아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변해 있었다. <strong>어두운 밤길, 합승한 낯선 남자보다도 변해버린 도시가 낯설고 두렵다.</strong></p>
<p>은모는 파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이 물려준 땅과 집이 있었고,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갈 생각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어느 순간, 자신을 떠나 보낼까봐 먼저 그를 떠났다. 그렇게 파주를 떠났었다. 하지만, 사랑은 지워지거나 변하지 않았고 결국, 파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엔 중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변해버렸지만, 한결같이 은모를 기다려 온 중식. <span style="color: #FF400D;"><strong>도시는 변하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은모에게 파주는 그런 변함없는 사랑, 중식의 공간인 것이다.</strong></span></p>
<div style="height:30px"></div>
<p><span style="color: #79531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중식의 &#8220;파주&#8221;</span></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paju03.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paju03-tm.jpg" width="150" height="150" alt="paju03.jpg" style="float:left; margin-right:20px; margin-bottom:5px;" /></a>중식의 사랑은 항상 고통스럽다. 그의 사랑은 항상 잔인한 파국이 뒤따른다. 첫사랑도 잔인한 기억으로 남았고 결국, 쫒기듯 파주에 왔다. 지금까지, 정착할 수 없는 도피자의 삶을 살던 그였는데, 파주는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기댈 것 하나 없는 파주에서 들판에 꽂힌 허수아비처럼, 홀로 남아 은모를 기다린다. 철대위(철거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자청하며 자신의 고향도 아닌, 파주를 지켜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떠돌이처럼 살던 그가 아닌가? 미련없이 떠나면 그만인데 무엇을 위해 싸우나? 중식에게 은모가 묻는다. &#8220;이런 일 왜 하세요? 이런 일이 형부에게 보람되세요?&#8221; 중식은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은모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켜서 쑥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린 사랑이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인지&#8230;. 중식 개인에게 파주는 객지일 뿐이지만, 은모의 고향이며, 두 사람이 만난 곳이며, 기다리면 은모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p>
<p><strong><span style="color: #FF400D;">중식에게 파주는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span></strong> 보상받을 땅도 집도 없는 파주에서 철거민을 위해 싸우는 중식. 운명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의 굴레,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중식에게 사랑이란 먼저 말하면 날아가 버리는 존재였기 때문에 은모에게 자신의 사랑을 말할 수도 없다.  단지, 그녀를 기다릴 수 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 그녀의 도시를 지켜내야 한다. 어쩌면, <span style="color: #FF400D;"><strong>&#8216;개발되는 도시&#8217;, &#8216;변하려는 도시&#8217;가 아닌, 변해버릴 사랑, 떠나갈 것 같은 사랑에 맞서</strong></span> 너만은 변하지 말아달라고, 내게 남은 전부라고 절규하며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p>
<div style="height:30px"></div>
<p><span style="color: #795313; font-size: 14px; font-weight: bold;">박찬옥 감독의 &lt;파주&gt;</span></p>
<p>박찬옥 감독은, 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묻자,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사랑을 연기할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다. 도시가 변하는 듯, 두 사람도 나이를 먹고 늙어가지만, 둘의 사랑만은 처음 그대로 파주에 있었다. 두 사람의 나이와 상황이 변하고, 도시가 개발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p>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paju04.jpg" width="740" height="378" alt="paju04.jpg" /></p>
<p>중식은 파주에서 교회 공부방을 맡아 가르치게 되고 은모는 이곳의 학생이었다. 파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중식은 경찰에 쫒기는 운동권 학생(대학생)이었고 은수(은모의 언니)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사고로 은수가 죽자, 처제인 은모와 가족을 이뤄 살게된다. 청년이었던 중식은 어느덧 중년이 되고 은모의 보호자가 되어 심리적으론 장년의 정서까지 담아낸다. 감독은 이런 이유로 중식의 역에 이선균을 떠올렸다고 한다.</p>

<p>은모는 철없는 소녀였다. 그녀에게 중식은 공부방 선생님이었으며, 형부가 되었고,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철부지 소녀가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영화 속에 고스란이 투영되어 있는데, 중식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p>
<p>파주가 배경이 되는 이유도 같다. <strong>어느 도시, &#8216;파주&#8217;가 아니라 개발의 논리 속에 삶의 흔적을 묻어가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도시의 이야기인 것이다.</strong> 청년이었던 중식이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교복입고 뛰어다니던 철부지가 여인이 되어 돌아왔고, 그 7년의 시간 동안 고향집은 도시계획에 의해 공원이 조성될 녹지지역이 되어 버렸다. 우리 모두가 늙어가고 변하듯 도시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p>
<p>하지만, &lt;파주&gt;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영화는,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중식과 은모, 둘의 사랑처럼 이 도시에 변함없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은모와 중식의 사람처럼 우리 도시 안에도 변하지 않는 무엇이 존재할까?</p>
<div style="height:30px"></div>
<p><span style="color: #FF400D;"><span style="font-size: 14px; font-weight: bold;">박찬옥 감독의 &lt;파주&gt;는 &#8216;파란의 도시&#8217; 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span></span></p>
<p><span style="color: #FF400D;"><span style="font-size: 14px; font-weight: bold;">우리는 이 도시를 무엇으로 기억할 것이며, 이 도시엔 무엇이 남을까?</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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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인을 위한 도시는 없다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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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2 Oct 2009 08:17:10 +0000</pubDate>
		<dc:creator>leopon9</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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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랜드마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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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지하철]]></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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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의사로부터 남편, 루디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된 트루디는 남편을 설득해 자식들이 있는 도시(베를린)로 여행을 떠난다. 한 평생 시골마을에서 살던 노부부에게 도시의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자식들을 뒤로 하고 나선 길에 마주한 것은 지하철 티켓 발권기. 복잡한 노선도 속에서 목적지를 찾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돈이 있어도 티켓을 살 수 없는 상황에 노부부는 화가 난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style="margin-right:3px;"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1.jpg" alt="hanami01.jpg" width="365" height="525" /><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5027" title="hanami02.jp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2.jpg" alt="hanami02.jpg" width="372" height="525" /></p>
<p>영화 &lt;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gt;은 늙은 노부부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도시를 말하는 영화다.</p>
<p>의사로부터 남편, 루디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트루디는 남편을 설득해 자식들이 있는 도시(베를린)로 여행을 떠난다. 한 평생 시골마을에서 살던 노부부에게 도시의 풍경은 낯설기만 하다. 손자, 손녀는 비디오게임에 정신이 팔려있고, 아들부부는 제 할 일에 바쁘고 딸은 여자친구와 연애에 빠져 있으니(레즈비언) 노부부는 바삐 자리를 뜬다. 자식들을 뒤로 하고 나선 길에 마주한 것은 지하철 티켓 발권기. 복잡한 노선도 속에서 목적지를 찾아내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돈이 있어도 티켓을 살 수 없는 상황에 노부부는 화가 난다.</p>
<p>&#8216;편하라고 만든 시설일텐데 도무지 방법을 알 수 없으니, 이 도시는 나를 바보로 만드는구나!&#8217;</p>
<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5.jpg" alt="hanami05.jpg" width="408" height="223" /><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3-1.jpg" alt="hanami03-1.jpg" width="332" height="223" /></p>
<p><span style="color: #FF400D;"><span style="font-size: 14px; font-weight: bold;">베를린은 노부부를 반기지 않는다. 그의 자식들처럼 말이다.</span></span> 코엔 형제가 만든 영화의 제목처럼, 정녕 &#8216;노인을 위한 나라&#8217; 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노부부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하나밖에 없다. 트루디와 루디(남편), 둘이 함께라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트루디는 알고 있다. 루디가 곧 자신을 두고 떠날 것이란 사실을. 하지만 운명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잖턴가! 시한부의 남편을 두고 트루디가 먼저 죽음을 맞는다. 외로움은 모두 루디의 몫이 되어버리고, 고민 끝에 생전에 아내가 원하던 일본행을 결심한다.</p>
<p>아내가 가보고 싶어 했던 후지산이 있는 곳, 가장 아끼는 아들, 칼이 사는 곳.</p>
<p>
<p>하지만 결코 도시는 노인의 편에 서지 않았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낯선 메트로폴리스 안에서 독일 시골 노인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고층의 빌딩 숲 안에서 어느 쪽에서 해가 뜨고 노을이 지는지, 동서남북 자연의 나침반 마저도 방향을 잃었다. 제 길 가기에 바쁜 도시인의 물결 속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기도 버겁다. 메트로폴리스, 동경에 표류한 시골할아버지, 루디. 그는 도로 모퉁이 난간에 순수건을 묶는다. 혼란스러운 이곳, 도시에서 그가 의지할 것이라곤 난간 위의 손수건이 전부다. 그만의 이정표며, 랜드마크인 것이다.</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3.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3-tm.jpg" alt="hanami03.jpg" width="370" height="202"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4.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09/10/hanami04-tm.jpg" alt="hanami04.jpg" width="370" height="202" /></a></p>
<p><span style="color: #FF400D;"><span style="font-size: 14px; font-weight: bold;">우리의 도시와 건축이 루디의 손수건 만큼 따뜻하고 인간적일 수는 없는 것일까?</span></span></p>
<p>&lt;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gt; 은 아내 잃은 루디의 이야기 이면서 도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루디와 트루디, 두 노인은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이해되는데, 이는 베를린과, 동경의 도시 환경이 노인들을 배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식들이 그러했듯 도시는 노인을 반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p>
<p>영화&lt;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gt;을 통해, 사랑 후에 남은 것과 이 도시에 남겨진 것, 이 두 가지를 같이 생각해본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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