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xmlns:content="http://purl.org/rss/1.0/modules/content/"
	xmlns:wfw="http://wellformedweb.org/CommentAPI/"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
	xmlns:sy="http://purl.org/rss/1.0/modules/syndication/"
	xmlns:slash="http://purl.org/rss/1.0/modules/slash/"
	>

<channel>
	<title>레오퐁 &#187; Photo &amp; Essay</title>
	<atom:link href="http://leopon.co.kr/category/logical-emotion/photo-essay/feed"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 />
	<link>http://leopon.co.kr</link>
	<description>Pop+Kitecture(Pop+Architecture) Magazine 팝키텍쳐 매거진</description>
	<lastBuildDate>Thu, 26 Apr 2012 01:27:55 +0000</lastBuildDate>
	<language>en</language>
	<sy:updatePeriod>hourly</sy:updatePeriod>
	<sy:updateFrequency>1</sy:updateFrequency>
	<generator>http://wordpress.org/?v=3.3.2</generator>
		<item>
		<title>압사의 위기에서 오아시스를 외치다!</title>
		<link>http://leopon.co.kr/freeblue/2011/11211</link>
		<comments>http://leopon.co.kr/freeblue/2011/11211#comments</comments>
		<pubDate>Thu, 03 Mar 2011 06:26:36 +0000</pubDate>
		<dc:creator>프리블루</dc:creator>
				<category><![CDATA[Photo & Essay]]></category>
		<category><![CDATA[공연장]]></category>
		<category><![CDATA[오아시스]]></category>
		<category><![CDATA[콘서트]]></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leopon.co.kr/leopon/2011/11211</guid>
		<description><![CDATA[2006년의 어느 날, 오아시스 콘서트가 있었다. 공연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날 만큼은 공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은 한창 브릿팝에 빠져있을 때였고 그래서 내게 오아시스는 80만 카시오페이아를 거느린 동방신기보다 우월한 존재였다. 게다가 첫 내한공연이었기 때문에 사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이 설렜을 것이다. 실제로 공연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06년의 어느 날, 오아시스 콘서트가 있었다. 공연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 날 만큼은 공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부터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은 한창 브릿팝에 빠져있을 때였고 그래서 내게 오아시스는 80만 카시오페이아를 거느린 동방신기보다 우월한 존재였다. 게다가 첫 내한공연이었기 때문에 사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이 설렜을 것이다. 실제로 공연이 열렸던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 앞에는 몇 시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누군가의 기타 반주에 맞춰 오아시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미 흥분과 열기는 절정으로 치솟아 있었고, 손끝만 대도 뻥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모두가 그렇게 부푼 상태로 입장을 시작했다. 어쩌면, 재앙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p>
<p>먼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재앙’이란 절대로! 오아시스의 콘서트를 향한 표현이 아니다. 문제는 공연장과 진행에 있었다. 관객들은 번호대로 줄을 서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물론 좌석이 없는 스탠딩 공연이었으므로 번호순서대로 문을 통과하되 빨리 뛰어가서 먼저 앞에 서면 그 자리가 내 자리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당연하게도 입장 초반부터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의 앞자리 침공이 시작됐다. 사람이 더 많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그 압박은 점점 더 거세어졌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연장의 구조상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 고통은 상당했다. 하지만 한 번 퇴장하면 다시는 제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힘을 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힘들다고 중간에 나갈 수도 없었다.</p>
<p>닫혀 있는 공간 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관객들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리고 한겨울이었음에도 공연 전부터 땀이 흘렀고 산소가 필요했다. 그런데 설상가상 예정되어 있던 시간이 지났음에도 공연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갑자기 공연장의 조명이 일시에 꺼졌다. 드디어 시작인 걸까? 흥분한 관객들이 뒤에서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압사의 고비를 몇 번이나 간신히 넘겨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아시스가 아닌 오프닝 밴드 뷰렛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오프닝 공연이 끝나고 다시 조명이 꺼졌을 때, 그때부턴 진짜 ‘전쟁’이었다. 노래 한 곡 한 곡 흘러나올 때마다 슬램의 바다에서 체력적 한계를 느끼며 키 큰 남자들의 팔꿈치에 사지 타박상을 입어야 했다. 물론, 공연을 보는 동안 정말로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했지만 동시에 힘겨웠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공연 도중에 실신해서 실려나가는 관객도 있었다. 목이 말랐지만 난간이 있는 곳까지 인파를 뚫고 가야만 진행요원에게 물을 받아 먹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난,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p>
<p>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그 때까지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지하철 플랫폼에 다시 모여 오아시스의 노래를 부르며 떼창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모두가 탈진한 상태였지만 표정만큼은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봤을 때, 공연장이 좀 더 쾌적했더라면 더욱 더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꽤나 비싼 가격이었던 입장권…… 물론 오아시스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98,000원은 제 몫을 다 했고 그래서 전혀 아깝지 않았지만 공연장 시설만큼은 그 값어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절대 잊을 수 없는 2006년의 어느 날, 나는 압사의 위기에서 오아시스를 외쳤다!</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leopon.co.kr/freeblue/2011/11211/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item>
		<item>
		<title>&#8216;나는 세상의 일부, 건축은 시대의 상징이다&#8217; Anna Di Prospero의 사진</title>
		<link>http://leopon.co.kr/leopon/2011/11041</link>
		<comments>http://leopon.co.kr/leopon/2011/11041#comments</comments>
		<pubDate>Sun, 27 Feb 2011 23:39:04 +0000</pubDate>
		<dc:creator>leopon9</dc:creator>
				<category><![CDATA[Photo & Essay]]></category>
		<category><![CDATA[도시(Urban)]]></category>
		<category><![CDATA[사진]]></category>
		<category><![CDATA[이탈리아]]></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leopon.co.kr/?p=11041</guid>
		<description><![CDATA[23세, 이탈리아 출신의 Anna Di Prospero는 사진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녀는 지난 3년간 사진 속에 자화상을 담는데 전념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녀의 관심은 도시와 건축을 향하고 있다. 자신을 이 시대의 일부로 이해하기 위해 자화상을 찍는다는 그녀. 안나가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새로운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물과 같다고&#8230; 사진을 통해 사람과 공간의 관계, 상호작용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0.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0-tm.jpg" width="375" height="249" alt="anna_di_prospero00.jpg"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14.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14-tm.jpg" width="375" height="249" alt="anna_di_prospero14.jpg" /></a></p>
<p>23세, 이탈리아 출신의 Anna Di Prospero는 사진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녀는 지난 3년간 사진 속에 자화상을 담는데 전념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녀의 관심은 도시와 건축을 향하고 있다. 자신을 이 시대의 일부로 이해하기 위해 자화상을 찍는다는 그녀. 안나가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이유라고 한다. 새로운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상징물과 같다고&#8230; 사진을 통해 사람과 공간의 관계, 상호작용을 찾는 것이 작업의 주된 컨셉이라고 한다.</p>
<p>사진 속의 그녀는 마치 그녀 앞의 건축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1.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1-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1.jpg"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2.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2-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2.jpg" style="margin-top:10px; margin-bottom:10px;"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3.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3-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3.jpg"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4.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4-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4.jpg" style="margin-top:10px; margin-bottom:10px;"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5.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5-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5.jpg"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6.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6-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6.jpg" style="margin-top:10px; margin-bottom:10px;"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7.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7-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7.jpg"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8.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8-tm.jpg" width="750" height="500" alt="anna_di_prospero08.jpg" style="margin-top:10px;"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11.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11-tm.jpg" width="750" height="499" alt="anna_di_prospero11.jpg" style="margin-top:10px; margin-bottom:10px;"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10.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10-tm.jpg" width="750" height="499" alt="anna_di_prospero10.jpg"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9.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2/anna_di_prospero09-tm.jpg" width="750" height="499" alt="anna_di_prospero09.jpg" style="margin-top:10px; margin-bottom:10px;" /></a></p>
<div style="font-size:8.5pt;padding-top:15px;">
  <span style="font-size: 11px;"><font color="#824008">사진: © Anna Di Prospero</font><br />
  <font color="#824008">자료제공 : Anna Di Prospero |</font> <u><a href="http://www.flickr.com/photos/dipanna" target="_blank"><font color="#824008">flickr</font></a></u><br /></span>
</div>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leopon.co.kr/leopon/2011/11041/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item>
		<item>
		<title>카페의 종말</title>
		<link>http://leopon.co.kr/freeblue/2011/10801</link>
		<comments>http://leopon.co.kr/freeblue/2011/10801#comments</comments>
		<pubDate>Mon, 14 Feb 2011 23:50:55 +0000</pubDate>
		<dc:creator>프리블루</dc:creator>
				<category><![CDATA[Photo & Essay]]></category>
		<category><![CDATA[담배]]></category>
		<category><![CDATA[카페]]></category>
		<category><![CDATA[커피]]></category>
		<category><![CDATA[홍대]]></category>
		<category><![CDATA[흡연]]></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leopon.co.kr/leopon/2011/10801</guid>
		<description><![CDATA[아주 오래 전부터 카페든 커피숍이든 다방이든 whatever 내가 아는 모든 커피를 파는 공간에선 흡연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 둘씩 금연을 선포하더니 심지어는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를 비난하며 ‘넌 어째서 그 모양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카페들이 흡연자들을 위해 흡연석을 따로 마련해주기도 했지만……]]></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가끔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짊어지고 홍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사실 강북 지역에서 홍대만큼 카페가 많은 곳도 찾기 힘들다. 카페가 커피숍이라고 불리었던 시절에는 길바닥에 널리고 널렸던 게 커피숍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이 대신하면서 카페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대 거리에는 늘 새로운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는 뜻일 테다. 아무튼 새롭게 자리를 잡은 카페들의 컨셉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유독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전석 금연’이라는 것이다. 카페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그리고 카페를 찾는 손님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흡연의 권리가 상실됐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디 이 말을, 갈 곳 잃은 불쌍한 흡연자의 한탄이라고 여겨주길.</p>
<p>아주 오래 전부터 카페든 커피숍이든 다방이든 whatever 내가 아는 모든 커피를 파는 공간에선 흡연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 둘씩 금연을 선포하더니 심지어는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를 비난하며 ‘넌 어째서 그 모양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카페들이 흡연자들을 위해 흡연석을 따로 마련해주기도 했지만…… 통 유리로 둘러진 협소한 공간에 마치 전시라도 된 듯 모여 앉아 제대로 환기도 안 되는 상황에서 피우는 담배는 정말이지, No, thank you. 하긴 그나마 흡연석을 실내에 만들어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한 겨울에 실외 흡연석으로 안내하는 카페도 있었으니까.</p>
<p>모두가 건강을 외치는 시대이니만큼 많은 건물들이 전 층 금연화 됐고 그래서 담배 한 가치 피우기 위해 사방팔방 헤매야 하는 사람들에게 카페는 일종의 피난처와도 같다. 그런데! 어째서 전 좌석 흡연 금지 카페는 마구 늘어나는데 전 좌석 흡연 카페는 계속 줄어드느냔 말이지. 금연이 대세라서?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계기로 흡연자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예전보다 커졌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하고 싶은 말 채 뱉지 못하고 은둔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lt;번지점프를 하다&gt;를 기억하는가. 태희(이은주)가 인우(이병헌)에게 라이터를 선물하며 “나, 담배 멋있게 피우는 남자 좋아해…&#8230;”라고 말한다. 만약 그 시대배경이 요즘이었다면, 인우는 태희에게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답답한 흡연석에 앉았거나 추운 야외로 나가 덜덜 떨어야 했을 것이다. 이건 정말이지 로맨틱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지 않은가!</p>
<p>그래. 다 괜찮다 치자. 하지만 이왕 흡연실을 만들 거라면 좀 더 흡연자를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 구석에 유리 막 하나 세워놓고 흡연석이라 이름 붙이지 말고 창문이 없다면 환기 시설을 제대로 설치해주었으면 하고 또 흡연자도 사람이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그러니 ‘담배가 그렇게 피우고 싶으면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매정함 대신 적절히 에어컨도 틀고 히터도 틀어주는 다정한 마음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하다. 솔직히 이 정도의 바람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잖아? 매너 없게 손에 담배 들고 길바닥을 배회하고 아무데나 꽁초 버리고 침 뱉는 몇몇 무개념 흡연자들 덕분에 착한 흡연자들까지 싸잡혀서 욕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다.</p>
<p>나는 요즘도 가끔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짊어지고 홍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금연이 아닌 카페를 찾아서. 그런 의미에서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 ‘이리카페 사랑해요!’</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leopon.co.kr/freeblue/2011/10801/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item>
		<item>
		<title>밀레니엄의 종각 그리고 축제</title>
		<link>http://leopon.co.kr/freeblue/2010/10154</link>
		<comments>http://leopon.co.kr/freeblue/2010/10154#comments</comments>
		<pubDate>Tue, 28 Dec 2010 23:40:40 +0000</pubDate>
		<dc:creator>프리블루</dc:creator>
				<category><![CDATA[Photo & Essay]]></category>
		<category><![CDATA[거리]]></category>
		<category><![CDATA[야경]]></category>
		<category><![CDATA[종로]]></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leopon.co.kr/?p=10154</guid>
		<description><![CDATA[며칠만 지나면 나도 서른이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나가는 것도 꺼려졌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있어도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에는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가 한파로 얼어붙지 않았더라도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아마 문제라면 이게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며칠만 지나면 나도 서른이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는 게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나가는 것도 꺼려졌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있어도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에는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가 한파로 얼어붙지 않았더라도 나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아마 문제라면 이게 더 큰 문제가 아닐는지. 어릴 때는 집안에 들어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이 무척이나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가 그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단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들뜬 분위기에 섞이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 것이다. 내 나이 또래에도 노는 게 마냥 즐거운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어쩌면 어릴 때 이미 원 없이 놀아봤기 때문에(?) 시들시들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나도, 특히 연말 무렵이면 신이 나서 친구들과 함께 뛰쳐나가곤 했었던 것이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는 게 그날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꽤나 열정적인 시절이었다.</p>
<p>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는 밀레니엄의 보신각이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나는 매년 12월 31일에 일부러 종각까지 가서 새해를 알리는 타종 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는 나이를 먹는 게 싫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가 바뀌는 것이 즐거워서 그곳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단지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었던 10대의 혈기를 쏟아부을 무언가가 한창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TV로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12월 31일 밤의 종각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래서 자칫 인파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종로2가까지 밀려날 만큼 한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기가 쉽지 않았다. 보신각을 찾았던 첫해에는 경험이 없었던 탓에 우왕좌왕하느라 타종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종각역에 지하철이 정차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종로3가까지 가서는 (서울에 살지 않을 때라) 길도 모르는데 이제 어떡하느냐며 걱정하다가 사람들을 따라 추위에 떨면서 종각까지 걷고 또 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뜬 표정으로 웃고 있었고, 곳곳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p>
<blockquote>
<p>2000년 0시 0분이 되면, 모든 디지털시계가 멈추고 핵폭탄이 터져서 종말이 올 거라던 얘기들&#8230;</p>
</blockquote>
<p>밀레니엄에는 그 열기가 몇 배 더 뜨거웠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의 광화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종각역 지하도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고, 광화문에서도 종로3가에서도 보신각 앞까지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압사의 위기를 수없이 넘겨야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실제로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니, 지금 이렇게 살아서 글을 쓰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날의 분위기는 참 묘했다. 단지 하루가 지나고 해가 바뀌는 것뿐인데도 꼭 거대한 사건이 터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실제로 여러 소문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2000년 0시 0분이 되면, 모든 디지털시계가 멈추고 핵폭탄이 터져서 종말이 올 거라던 얘기들이 떠오른다. Y2K란 용어를 기억하시는지? 어렸을 때라 Y2K는 일본인이 섞인 그룹인 줄만 알았지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당시에 얼마나 Y2K에 대한 뉴스와 말들이 많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p>
<p>12시가 가까워질수록 종각은 더 많이 붐볐다. 경찰들의 만류에도 지하철 입구 꼭대기 위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보신각 주변에 벽을 치고 서 있던 전경들 앞에 있었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뒤에서 밀어대는 사람들 때문에 이리저리 휩쓸리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앞에 서 있던 전경 한 분이 슬쩍 팔을 빼서 나를 잡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인사도 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가 끝까지 나를 잡아준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타종이 끝날 때까지도 핵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시계도 멈추지 않았다. 대신 하늘에선 레이저쇼가 펼쳐졌고 모퉁이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가수들의 축하무대가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이렇다 할 축제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조금 춥고 움직이기는 게 버거워도 이만한 즐길 거리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타종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다. 하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인 종로를 꽉 채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와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들뜬 기대감,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되어 화려한 조명을 쏘고 폭죽이 터지면서 자아내는 흥겨움이 더해지면서 거대한 축제가 완성되는 것이다. 서른세 번 종이 울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면 꽤나 장관일 것 같다.</p>
<p>요즘은 종로를 떠올리면, 12월 31일의 열기보다는 촛불집회라든지 시위가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종로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청계천이 복개되었고, 많은 상점들의 간판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피맛골은 예전처럼 붐비지 않고 종로타워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건반이 군데군데 빠져버린 낡은 피아노 길과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사라진 극장들&#8230;&#8230;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올해 12월 31일에도 사람들이 종로에 모여들까? 10년 전, 밀레니엄을 맞이하던 그날 밤 타종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인파에 다시 한 번 휩쓸렸을 때 친구들과 나는 숨을 헉헉거리며 종로 어딘가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처럼 사람들을 피해 들어온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들을 만나 밤새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그런 일들이 벌어질지 문득 궁금해진다. 축제에 로맨스가 없다면 어딘지 모르게 섭섭해지니까. 올해의 마지막 날, 나는 역시나 집에 있을 계획이다. 그리고 TV를 통해 종각의 풍경들을 보게 될 것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들고, 화려한 무대들이 준비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직은 해가 바뀌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leopon.co.kr/freeblue/2010/10154/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0</slash:comments>
		</item>
		<item>
		<title>한강의 고요함이 그립다</title>
		<link>http://leopon.co.kr/freeblue/2010/9053</link>
		<comments>http://leopon.co.kr/freeblue/2010/9053#comments</comments>
		<pubDate>Mon, 29 Nov 2010 01:27:32 +0000</pubDate>
		<dc:creator>프리블루</dc:creator>
				<category><![CDATA[Photo & Essay]]></category>
		<category><![CDATA[Seoul]]></category>
		<category><![CDATA[감성]]></category>
		<category><![CDATA[서울]]></category>
		<category><![CDATA[야경]]></category>
		<category><![CDATA[일상]]></category>
		<category><![CDATA[장소성]]></category>
		<category><![CDATA[한강]]></category>

		<guid isPermaLink="false">http://leopon.co.kr/leopon/2010/9053</guid>
		<description><![CDATA[서울에 사는 사람치고 한강에 얽힌 사연이나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강북에서 강남, 혹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일주일에 닷새는 한강을 봐야만 한다. 돈이 많은 갑부들이라면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변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여름 열대야를 피하기 위해 캠핑을 나올 것이다. 감출 게 많은 커플들은 한강시민공원 주차장에서 뜨거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서울에 사는 사람치고 한강에 얽힌 사연이나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강북에서 강남, 혹은 강남에서 강북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일주일에 닷새는 한강을 봐야만 한다. 돈이 많은 갑부들이라면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변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고,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여름 열대야를 피하기 위해 캠핑을 나올 것이다. 감출 게 많은 커플들은 한강시민공원 주차장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강에 간다.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운동을 하는 사람들, 아저씨들은 낚시를 하고 (잡은 물고기를 정말 먹을지 항상 궁금했다), 젊은이들은 사진을 찍는다. 주말이면 잔디밭에 모여 동문회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즐겁기만 한 공간은 아니다. 한강다리가 자살로 유명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아무튼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한강에선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진다. 봄에는 벚꽃축제, 여름엔 수영장이 개장하고, 가을엔 세계 불꽃축제가 열린다. 그리고 가끔 괴물도 나온다. 한강은 참 다이나믹한 공간이다.</p>
<p>도대체 언제부터 ‘한강 고수부지’가 ‘한강 시민공원’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분명 ‘국민학교’를 졸업했음에도 ‘초등학교’라고 말해야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무튼 나는 한강이 ‘고수부지’였던 시절에 자주 그곳을 찾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2003년에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대개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한 때 건대 앞 포장마차에서 주구장창 술을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왜 굳이 그 동네를 택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친구들 대부분이 그 근처에 살고 있었고 한강과도 가깝다는 게 이유였다. 이제와 말이지만 건대 앞 포장마차가 추억의 산물이 되어버렸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그곳이 건대 앞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술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시절에 나와 친구들은 포장마차가 닫을 시간이 되면 종종 한강을 찾았다. 건대 앞에서 뚝섬유원지까지는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지만 도보로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우리는 굳이 소주가 든 봉지를 들고 뚝섬유원지까지 걸어가곤 했다. 그 시절의 한강 고수부지는 포장마차보다도 조용했고, 무엇보다 운치가 있었다.</p>
<p>낮의 한강이 활기로 가득 차있다면, 밤의 한강에는 무드가 있다. 여느 술집보다 멋진 조명이 있고, 주인 없는 넓은 공간과 적당한 어두움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한 바람과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처럼 갈 곳 잃은 청춘들이 밤의 한강을 서성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신문지 두어 장이면 테이블 세팅이 완료. 그 위에 불어터진 사발면과 새우깡을 펼쳐놓으면 근사한 술상이 된다. 멈출 줄 모르고 지나치는 강물처럼 시간도 그렇게 흘러간다는 걸 모르던 나이였다.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한참을 깔깔대며 술을 마시곤 했다. 그리고 늘 동이 트고 첫 차가 다닐 시간이 되어서야 지친 몰골로 지하철을 탔다.</p>
<p>그때만 해도 한강은 나에게 참 가깝고 친근한 공간이었다. 술을 거기서 마셨을 뿐이지 내가 살고 있던 곳에서는 꽤나 먼 거리였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강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지만 그곳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나만의 생각일 듯 하나, 지금의 한강은 지나치게 번잡스럽고, 어쩐지 한강 자체가 주변 아파트 거주민들을 위한 공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방팔방 한강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들은 때론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세느강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한강은 세느강 같은 낭만이나 분위기는 잃어버린 것 같다. 어쩌면 나 자신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구석구석 고여있는 낭만을 발견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한강 주변의 아파트가 싹 사라져버리거나 시세가 확 떨어진다면 모를까 그 전까지는 한강이 나의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군데군데 자리잡은 촌스러운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유람선 레스토랑 같은 것도 함께 없어졌으면 좋겠다. 강은 강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 자꾸만 이것저것 보태어지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p>
<p>혹시 영화 &lt;괴물&gt;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소복하게 눈이 쌓인 한강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간이 매점 하나. 불빛이라곤 근처 가로등 하나뿐인 그 고요함. 내가 한강에 바라는 건 딱 그런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한강엔 간이 매점 하나면 충분하다. 유람선 레스토랑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참 비싸고 맛없다. 차라리 뜨끈한 사발면 한 그릇이 낫지. 나의 청춘과 함께했던 한강이 추억의 산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나간 청춘이 그리운 것인지 그때의 한강이 그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p>
]]></content:encoded>
			<wfw:commentRss>http://leopon.co.kr/freeblue/2010/9053/feed</wfw:commentRss>
		<slash:comments>2</slash:comments>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