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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오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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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Pop+Kitecture(Pop+Architecture) Magazine 팝키텍쳐 매거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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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92년, 저는 수원 화성 건설을 계획했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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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19 Oct 2011 04:30:02 +0000</pubDate>
		<dc:creator>이 지은</dc:creator>
				<category><![CDATA[Story of Site]]></category>
		<category><![CDATA[수원]]></category>
		<category><![CDATA[정약용]]></category>
		<category><![CDATA[화성]]></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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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수원천은 화홍문을 통해 화성 내부로 흘러 들어간다. 오른쪽 위로 방화수류정이 보인다] 제 이름은 정약용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다산(茶山)’이라고도 부르지요. 한꺼번에 8가지 정도의 일을 해서 그런지 책도 많이 쓰게 되고 또 사람들에게도 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모양입니다. 뒤를 돌아보니 제 인생,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요. 하지만 인생의 황혼인 지금 가장 생각나는 것은 한가지 뿐입니다. 수원 화성(華城). 버들가지와 꽃이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1792_01.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1792_01-tm.jpg" alt="1792_01.jpg" width="750" height="498" /></a><br />
<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수원천은 화홍문을 통해 화성 내부로 흘러 들어간다. 오른쪽 위로 방화수류정이 보인다]</span></p>
<p>제 이름은 정약용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다산(茶山)’이라고도 부르지요.</p>
<p>한꺼번에 8가지 정도의 일을 해서 그런지 책도 많이 쓰게 되고 또 사람들에게도 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모양입니다.<br />
뒤를 돌아보니 제 인생,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요. 하지만 인생의 황혼인 지금 가장 생각나는 것은 한가지 뿐입니다.</p>
<p>수원 화성(華城).<br />
버들가지와 꽃이 흩날리던 방화수류정.<br />
장용영 군사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화성행궁.<br />
팔달단 정상에서 화성을 바라보시던 금상(今上:임금)의 미소..</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1792_02.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1792_02-tm.jpg" alt="1792_02.jpg" width="750" height="498" /></a><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화성행궁. 행궁은 도성 밖에 있는 임금의 임시 궁궐을 말한다. 온양행궁, 남한산성행궁등이 있었다.]</span></p>
<p>그 아름다운 곳에 제가 쏟아 부었던 땀과 그 많은 불면의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p>
<p>1792년 겨울 저는 아버님 상중으로 한양을 떠나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 해 추운 어느날 금상께서 저에게 아주 희한한 일을 맡기셨습니다.<br />
홍문관의 직위를 가지고 있어도 모든 공무는 포기한 채 부모상을 지켜야 하는데, 그런 저에게 말씀 하실 정도니 꽤나 중요한 업무였지요.<br />
갓 30살을 넘긴 저에게 금상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br />
허허….새로운 도시를 만들라니요. 그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집니까.<br />
저의 당혹스러운 모습에 금상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p>
<p>“나는 이 새로운 도시가 백성들이 안전하게 잘 살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그것은 예전의 고루한 방식이 아닌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대 가슴에 품어왔던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p>
<p>성리학만이 아닌, 실학과 같은 폭넓은 학문을 통해 혁신적인 조선을 꿈꾸었던 저의 속마음을 금상은 알고 계셨고, 또 그 마음을 펼쳐 보라고 하신 겁니다.<br />
네…저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조부모상을 3년으로 하는 것이 맞는지, 5년으로 하는 것이 맞는지’로 온 나라가 싸우는 이 때, 전 그 기회를 반드시 잡기로 결심했지요.</p>
<p>저는 새로운 도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안전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조선에 가장 적합한 성곽을 계획했습니다. 물론 얼마 전 한강에 배로 다리를 만들어 본 경험은 있었지만, 성곽은 정말 큰 공사 아니겠습니까. 저는 먼저 조선의 성곽을 연구 한 후 조선에서 한번도 만들어 본적이 없는 새로운 성곽을 만들기로 했습니다.<br />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조선성곽의 문제점을 들어 유성룡이 제안한 『성설』, 중국 명나라 때 윤경의 『보약』등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 한 후, 저만의 방식으로 다시 정리했습니다.<br />
제가 여러 종류의 학문에 대해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저만의 ‘크게 분류하기’방식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지요.<br />
먼저 일곱 가지로 성곽 계획의 틀을 잡았습니다. 분류, 재료, 호참(성곽 둘레의 참호), 축기(터쌓기),벌석(돌 다듬기), 치도(도로), 조차(수레제작), 성제(성을 쌓는 법)외에 특히,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거중기와 큰 돌을 손쉽게 운반하는 수레를 만들었지요. 유형거(遊衡車)는 바퀴가 아주 튼튼하고 경사지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br />
얼마나 잘 만들었냐고 물으셨습니까?<br />
흠….예를 들자면, 이전의 수레 100대로 324일 걸려 운반할 짐을 유형거 70대로 154일만에 운반이 가능합니다.<br />
또한 거중기는 한 사람당 400근(약 240kg)을 들어 올릴 수 있어 공사기간을 빠르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지요. 금상께서도 이것으로 4만 냥 이상의 비용을 절약했다고 기뻐하셨습니다.</p>
<p>저는 화성의 전체 범위를 정하는 것이 모든 계획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략의 길이를 3,600보(약 4.24km)로 높이를 2장5척(7.75m)로 정했고 거기에 맞춰 석재, 기술자, 인부, 비용을 산출했습니다.</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1792_03.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1792_03-tm.jpg" alt="1792_03.jpg" width="750" height="498" /></a><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서쪽의 서장대와 장안문을 이어주는 석축]</span></p>
<p>성곽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석재의 경우 가까운 곳에 석재 채취장을 찾아 운반 비용을 최소화 했고, 석재의 크기를 용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한 수레에 싣는 숫자를 일정하게 했습니다. 그래야 전체 수요량에 맞춰 계산 할 수가 있지요. 물론 이런 방식을 제가 완전히 새로 고안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확한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춰 일을 진행하는 것이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의 낭비를 막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이번 화성에서 그 목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p>
<p><img style="float: left; margin-top: 5px; margin-right: 20px;"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1792_04.jpg" alt="1792_04.jpg" width="485" height="397" /> <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 width: 505px; float: left; margin-bottom: 10px;">[성문을 보호하는 반원모양의 옹성]</span> 화성 성곽은 예전 우리 조상이 도성을 만든 성곽과는 그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예전엔 마을을 둘러 쌓고 있는 성, 즉 도성(都城)이 있었고 전쟁 시에 피난을 가서 몸을 숨기는 산성(山城)이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성을 두 종류로 만들어야 하고 또 관리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화성은 그 두 가지의 성을 합친 ‘방어와 공격이 가능한’ 성곽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br />
전쟁이 나서 화성 바깥으로 도망가지 않아도 우리 백성들을 지킬 수 있도록 말이죠. 화성은 그런 이유로 몇 가지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옹성(甕城)과 현안(懸眼)이 그것입니다.<br />
옹성은 성문 밖에 반원형 등의 형태로 한번 더 쌓은 성을 말합니다.</p>
<p>성문을 보호하는 기능 외에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어 다른 방향에서 성곽을 기어 오르는 적을 차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중국에서 사용하던 방식인데, 임진왜란 후 유성룡의 제안으로 알려졌으나 조선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화성의 네 군데 성문에 모두 옹성을 두어 화재로부터 성문을 보호하도록 했습니다.<br />
현안의 경우 성벽을 일정하게 뚫어 외부의 적을 감시하고 활을 쏘는 용도였으나 저는 조금 변형을 했습니다. 벽의 구멍을 45도 각도로 아래로 뚫어 성벽에 근접한 병사도 동시에 감시하고 뜨거운 물을 끼얹어 적을 물리치도록 했지요.</p>
<p>아..저는 그때 정말로 행복했습니다.<br />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같은 이용후생학자들의 글을 읽으며 현실적인 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제가 그 꿈을 화성에서 실현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br />
물론 금상이 아니셨다면 그런 저의 꿈들도 그저 ‘기이한 선비의 글장난’으로 끝났을테지요.</p>
<p>화성(華城)…..<br />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제 꿈이자 금상이 꿈꾸시던 이상의 공간입니다.</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dasan.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dasan-tm.jpg" alt="dasan.jpg" width="750" height="694" /></a></p>
<p style="color: #808080;">일러스트레이션 : 금민</p>
<div style="font-size: 8.5pt; padding-top: 15px; color: #824008;">참고문헌 :<br />
정약용, 『여유당 전서』<br />
『정조실록』<br />
최홍규,『정조의 화성 건설』<br />
최홍규,『정조의 화성 경영 연구』<br />
유봉학 외,『정조시대 화성 신도시 건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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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제21회 정동도시건축세미나</title>
		<link>http://leopon.co.kr/mili212/2011/1994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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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1 Oct 2011 23:44:42 +0000</pubDate>
		<dc:creator>미리</dc:creator>
				<category><![CDATA[News]]></category>
		<category><![CDATA[강좌/세미나]]></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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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개요 주제 : 대한제국기 한성부(漢城府) 도시공간의 재편 발표자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이규철 박사님 시간 : 2011년 10월 14일(금) 오후 07:30/p&#62; 장소 :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 강당 참가비 : 4000원]]></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5>개요</h5>
<ul>
<li>주제 : 대한제국기 한성부(漢城府) 도시공간의 재편</li>
<li>발표자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이규철 박사님</li>
<li>시간 : 2011년 10월 14일(금) 오후 07:30/p&gt;</li>
<li>장소 :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 강당</li>
<li>참가비 : 4000원</li>
</ul>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guga21.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10/guga21-tm.jpg" width="580" height="819" alt="guga21.JPG"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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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City of 522 열한번째 동네, 고덕동을 갑니다.</title>
		<link>http://leopon.co.kr/leopon/2011/1301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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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9 Sep 2011 05:20:26 +0000</pubDate>
		<dc:creator>leopon9</dc:creator>
				<category><![CDATA[News]]></category>
		<category><![CDATA[답사]]></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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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City of 522″은 레오퐁에서 진행하는 서울 답사 프로그램입니다. 서울의 행정동 522개를 ‘가나다’ 순으로 찾아갑니다. 자유롭게 동네를 답사한 후, 세미나 시간을 통해 각자의 사진과 느낌, 의견을 공유하고 토의합니다. 레오퐁의 답사프로그램은 전공과 상관없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부담없이 참가하세요! 답사 동네 : 고덕동 답사 일자 : 2011년 10월 03일(월) 모일 장소 : 10시까지 5호선 고덕역 1번 출구 앞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6/godeok.jpg" width="580" height="562" alt="godeok.jpg" /></p>
<p>“City of 522″은 레오퐁에서 진행하는 서울 답사 프로그램입니다. 서울의 행정동 522개를 ‘가나다’ 순으로 찾아갑니다. 자유롭게 동네를 답사한 후, 세미나 시간을 통해 각자의 사진과 느낌, 의견을 공유하고 토의합니다. 레오퐁의 답사프로그램은 전공과 상관없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부담없이 참가하세요!</p>
<ul>
<li class="first-child">답사 동네 : 고덕동</li>
<li>답사 일자 : 2011년 10월 03일(월)</li>
<li>모일 장소 : 10시까지 5호선 고덕역 1번 출구 앞</li>
<li>일정<br />
  10:00 집결<br />
  10:00~10:30 팀 배정 및 답사 코스 안내<br />
  10:30~14:30 답사 진행(점심 식사는 답사진행 상황에 따라 팀별로 결정)<br />
  14:30~15:00 세미나 장소로 이동<br />
  15:00~17:00 세미나 진행<br />
  17:30 행사 종료</li>
<li>준비물 : 편안한 복장, 디지털 카메라, 필기도구, 간식비(3천원)</li>
<li class="last-child">신청<br />
  트위터 | <a href="http://twitter.com/leop_on" target="_top">leop_on</a> , 이메일 | <a href="mailto:leopon9@gmail.com" target="_blank">leopon9@gmail.com</a> 을 통해 접수(이름과 연락처 기재)<br />
  또는 Facebook <a href="http://www.facebook.com/event.php?eid=139950892745972" target="_blank">이벤트 페이지</a>를 통해 신청</li>
</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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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자급자족 에코 커뮤니티 공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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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1 Sep 2011 17:00:42 +0000</pubDate>
		<dc:creator>미리</dc:creator>
				<category><![CDATA[webBook]]></category>
		<category><![CDATA[Untitled]]></category>
		<category><![CDATA[도시(Urban)]]></category>
		<category><![CDATA[빌딩]]></category>
		<category><![CDATA[친환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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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예전의 모습을 간직한체 저탄소배출을 위한 에코 커뮤티티 마을!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에너지 절약을 위해 살 수 있는 이러한 공간이 아닐까??! In northwest Italy, close to the French border, a stunning medieval village has been restored to create a small, self-sufficient eco community. Residents cultivate nearby land and live within the beautiful stone buildings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1 class="post-listing-title" style="margin-top: 0px;margin-bottom: 0px;font-size: 1.6em;letter-spacing: 0.01em;color: #8e9938;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background-color: #fbfbfb"><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9/torri2.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9/torri2-tm.jpg" alt="torri2.jpeg" width="680" height="453" /></a></h1>
<div class="scrapLink">예전의 모습을 간직한체 저탄소배출을 위한 에코 커뮤티티 마을!</div>
<div class="scrapLink">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에너지 절약을 위해 살 수 있는 이러한 공간이 아닐까??!</div>
<div class="scrapLink">In northwest Italy, close to the French border, a stunning medieval village has been restored to create a small, self-sufficient eco community. Residents cultivate nearby land and live within the beautiful stone buildings otherwise known as Torri Superiore. The thirteenth century village stands amidst a lush, green valley overlooking plots of land scattered between the hamlet and a river.</p>
<div class="scrapLink">출처 : <a href="http://inhabitat.com/medieval-italian-village-restored-to-a-self-sufficient-eco-community/">http://inhabitat.com/medieval-italian-village-restored-to-a-self-sufficient-eco-community/</a></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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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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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3 Aug 2011 03:16:15 +0000</pubDate>
		<dc:creator>이 지은</dc:creator>
				<category><![CDATA[Story of Site]]></category>
		<category><![CDATA[궁궐]]></category>
		<category><![CDATA[수원]]></category>
		<category><![CDATA[역사]]></category>
		<category><![CDATA[정조]]></category>
		<category><![CDATA[조선]]></category>
		<category><![CDATA[한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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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예지야.. 환경전 왼쪽에 있는 건물로 가볼까? 소현세자가 돌아가신 후 약 100년 후에 조선의 희망이 바로 여기 경춘전에서 태어났어. 어릴 적 시련을 극복하고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해서 조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왕이 태어난거야. 이분이 경춘전에서 태어났을 때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꿨던 아버지가 너무 기뻐 그림으로 그려 걸었을 정도였지. [정조가 태어났던 경춘전. 오른쪽으로 소현세자의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blockquote><p>예지야.. 환경전 왼쪽에 있는 건물로 가볼까?</p>
<p>소현세자가 돌아가신 후 약 100년 후에 조선의 희망이 바로 여기 경춘전에서 태어났어.</p>
<p>어릴 적 시련을 극복하고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해서 조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왕이 태어난거야. 이분이 경춘전에서 태어났을 때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꿨던 아버지가 너무 기뻐 그림으로 그려 걸었을 정도였지.</p></blockquote>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4.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4-tm.jpg" alt="jungjo04.jpg" width="750" height="498" /></a></p>
<p><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정조가 태어났던 경춘전. 오른쪽으로 소현세자의 독살설이 나왔던 환경전이 보인다]</span></p>
<p>정조대왕(1752~1800) 조선 제22대왕.</p>
<p>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를 만든 임금으로 서얼등용, 금난전권 폐지 등을 통해 이전의 군주가 보여주지 못했던 백성 중심의 정치와 강력한 왕권강화를 이루었는데 창경궁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문정전 앞에서 발생한 일대의 사건은 정조의 트라우마이면서 동시에 그가 이룬 업적의 배경으로 이해되기도 한다.</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51.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5-tm.jpg" alt="jungjo05.jpg" width="750" height="408" /></a></p>
<p><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창경궁의 편전, 즉 임금의 일상 업무를 보던 문정전. 영조의 첫번째 부인인 정성왕후의 혼전으로도 사용되었다]</span></p>
<p>1762년 윤5월 13일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문정전 앞으로 끌어내어 세자 자질을 이유로 자결을 명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목숨까지 포기하도록 한 이 사건 뒤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차이와 노론과 소론 사이의 정치적 차이가 숨어있었다.</p>
<p>4살 때부터 사도세자를 성균관에 입교 시키며 혹독하리만치 철저하게 제왕교육을 시킨 영조는 자신의 기대치만큼 크지 못하는 아들에 대해 실망하기 시작했다. 실망감을 감추는 대신 아버지는 더욱 더 아들을 책망하며 그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세자 또한 부왕에게 반발하기 시작했는데, 주색에 빠지고 궁녀를 죽이는 등 그의 비행은 온 도성 안의 화제였다.</p>
<p>한때는 문무에 출중하고 명석한 두뇌(15세에 벌써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청정까지 했다)와 무사적 기질을 보였던(효종이 사용하던 청룡도가 매우 무거워 무예의 고수들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는데, 사도세자는 15~16세부터 이 청룡도를 자유롭게 사용할 정도로 신체조건과 무예에 능했다)사도세자는 이렇게 궁궐 안의 문젯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p>
<p>영조의 지지세력인 노론은 이때다 싶어 사도세자의 지지세력인 소론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도세자의 기행을 영조에게 고하기 시작했다.</p>
<p>1762년(영조 38) 5월 22일 노론파인 나경언의 고변서를 통해 사도세자의 비행이 정식으로 영조에게 알려졌다. 아들에 대한 처리문제에 고심하던 영조는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로부터 세자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아들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p>
<p>자신을 낳아준 생모에게서도 내침을 받은 세자는 자결을 하려 하였으나, 주변 소론세력의 저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 영조는 문정전 앞뜰로 뒤주를 가져오게 한 뒤, 아들을 밀어 넣고 자신이 직접 못을 박고 자물쇠를 달았다고 한다.</p>
<p>￼</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3.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3-tm.jpg" alt="jungjo03.jpg" width="750" height="498" /></a><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수원 화성행궁에 복원된 뒤주. 뒤주는 예전에 쌀을 보관하던 나무통을 말한다]</span></p>
<p>이때 11살 원손(왕세자의 맏아들)이였던 정조는 뒤주 앞으로 달려 나와 할아버지에게 애걸하였다.</p>
<p>“아버지를 살려 주십시오!”</p>
<p>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어린아이가 아버지가 죽는 것을, 그것도 자신이 존경하는 할아버지에 의해 살해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셈인데, 인생이 완전히 뒤틀리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영조는 이어 왕세손인 정조를 바로 왕세자로 책봉하고 일종의 협상을 하게 된다.</p>
<p>“네 아비의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면 안된다. 이 일에 가담했던 사람들조차 언급하지 말거라. 나에게 그걸 약속해 다오.”</p>
<p>14년 후 왕이 되기까지 정조는 매일 매일 조용히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했을 것이다. 한숨짓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모습에서, 사도세자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 하는 할아버지 영조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죽이라고 소리치던 노론세력의 모습에서 말이다.</p>
<p>1776년 3월 10일, 경희궁에서 즉위한 첫날 모든 대신들은 긴장하면서 왕의 첫마디를 기다렸다.</p>
<p>“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정조실록. 정조1년&lt;1776&gt; 3월 10일)</p>
<blockquote><p>예지야…</p>
<p>아마 엄청난 충격이었을꺼야. 사도세자의 뒤주 사건 이후 그에 대한 모든 얘기는 금기가 되었거든. 그런데 그 얘기를 아들이 즉위 첫날 처음으로 언급한거야.</p>
<p>정조 임금님이 그 이후 어떤 왕이 되었는지 궁금하지?</p>
<p>이제는 창덕궁 후원 가볼까…?</p>
<p>많은 사람들이 비원이라고 하는데, 비원은 후원을 관리하던 기관의 이름이자, ‘비밀의 정원’이라는 의미로 일제 강점기때 잠시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으니까 이제는 정확한 이름인 후원이나 금원이라고 불러야 해.</p></blockquote>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6.jpg"><img style="margin-right: 2px;"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6-tm.jpg" alt="jungjo06.jpg" width="374" height="562" /></a><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7.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7-tm.jpg" alt="jungjo07.jpg" width="374" height="562" /></a></p>
<p><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왼쪽 - 후원에 있는 관람지와 관람정, 오른쪽 - 옥류천]</span></p>
<blockquote><p>후원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부용지 위에 보이는 건물은 주합루이자 규장각이야. 1층이 왕실 도서를 모아둔 규장각이고 2층은 열람실로 주합루라고 부르는데, 요즘에 전체 건물을 주합루라고 부른단다.</p></blockquote>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1.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1-tm.jpg" alt="jungjo01.jpg" width="750" height="502" /></a></p>
<p><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창덕궁 후원에 있는 주합루. 바로 앞에 큰 문에는 임금이 양쪽의 작은 문에는 신하가 출입하였다.]</span></p>
<p>정조의 업적의 대부분은 인본주의적 왕권강화와 관련되어 있다. 영조시절부터 특정 정치세력에게 힘이 독점되는 것을 막기 위한 탕평책이 실시되었고, 정조는 이것을 이어 받아 서얼에게도 탕평책을 쓰게 되었다. 서얼이란 본 부인이 아닌 첩의 자식으로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살아 있으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없어 능력이 있어도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가던 그들을 과감히 등용하여 규장각에서 일하게 한 것이다. 원래 왕실의 도서를 관리하고 선왕의 글을 정리하는 기관이었던 규장각은 정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 시대 최고의 두뇌가 모였던, 일종의 ‘씽크탱크’ 역할을 했다.</p>
<p>또한 종로의 육의전과 시전 상인이 가지고 있었던 금난전권(상권을 독점하기 위해 정부와 결탁하여 개인의 상업권을 금지했던 권리)을 폐지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육의전 물품을 제외한 모든 물품에 대해서 누구라도 팔 수 있다는 권리를 인정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18세기 세계는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업의 가치와 자유경제에 대한 백성들의 요구를 국가가 들어줬다는 것이다. 백성의 아비로서 군림하는 것이 아닌, 백성의 소리를 들어주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p>
<p>실제로 다른 왕과 달리 정조는 백성에게 공고하는 문서인 윤음(綸音)에 한글을 종종 사용했다. 어려운 한자보다 널리 알려진 쉬운 한글로 써서 많은 백성들이 직접 왕의 말을 알 수 있도록 했다.</p>
<p>조선의 27대 왕 중 유일하게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를 남겼을 정도로 학자형 군주였던 정조는 단순히 글만 읽는 왕이 아니였다.</p>
<p>조선 시대 건축과 도시계획사에 큰 획을 그은 최대의 신도시 프로젝트를 진행 했다.</p>
<p>‘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는 평을 받는 수원 화성을 건설한 것이다.</p>
<p><a href="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2.jpg"><img src="http://leopon.co.kr/wp-content/uploads/2011/08/jungjo02-tm.jpg" alt="jungjo02.jpg" width="750" height="498" /></a></p>
<p><span style="font-size: 10px; color: #70440d;">[화성을 둘러싸고 있는 네 군데 큰 문중 하나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span></p>
<div style="font-size: 8.5pt; padding-top: 15px; color: #824008;">참고문헌 :『정조실록』</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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