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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블루의 공간에세이 – 어느 날, 자취방에 대한 단상
written by 프리블루
2009. 06. 02|9:41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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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구성작가, 웹기획자, 영화평론동호회매니저, 수동필카매니아, 애묘인, 야구폐인, 예비밀리언셀러작가, 건축가의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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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심상치가 않다. 여전히 밤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텁텁하고 무거운 모습이다. 바람도 심상치 않아서 사무실 곳곳에서 물기가 느껴진다. 비가 올 거라는 걸 알 수 있는 나이. 몸은 변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때 그시절과 같아서 괜스레 감수성이 자극 받아 마음이 먹먹해졌다. 지금 같은 하늘은 서울에 올라와 처음 구했던 싸구려 ‘자취방’을 닮았다. 영원히 햇빛 따위는 들어오지 않을 것만 같은 침울한 암흑, 형광등 불빛으로 한 낮을 보내고 창밖에서 밀려오는 텁텁한 먼지를 온 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주차장방은 정말이지 오늘 날씨 같았다. 채 두 평도 되지 않은 작은 정사각형 공간엔 이불 한 채와 빈 박스로 만든 테이블, 그리고 5천원짜리 싸구려 라디오가 전부였다. 우울하다기 보다는 고독에 가까운 느낌의 공간이었다. 설사 나에게 짐이 있었다 한들 과연 놓을 곳이나 있을까 싶은 작은 방 그리고 그 곳에 존재하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몇 년이 흐르고, 나는 전보다 훨씬 넓지만 땅 속과 좀 더 가까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분명 4인 가족이 살았다고 했는데 방은 두 개뿐이었다. 그나마도 하나는 너무 작아서 과연 둘이 누울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난방을 해도 눅눅하고 푹푹 찌는 한여름에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큰 방과 아무리 닦아도 묶은 떼가 지워지지 않았던 좁은 부엌 겸 거실, 그리고 우중충한 색깔의 타일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욕실까지 사실 집의 크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로 그 곳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독하게 좁은 곳에서 지내다 보니 크기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어리석음이랄까? 마음에 들지 않은 것 투성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단 하나, 나를 흐뭇하게 했던 것이 있었다면 바로 우중충한 욕실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욕조였다. 정말 팔이 빠질세라 닦고 또 닦아서 뜨거운 물을 채우고 맨 처음 몸을 담갔던 그 날, 거짓말 조금 보태 나는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호텔 스위트룸도 부럽지 않던 안락함. 비록 욕실 온도가 낮아서 만두찜통같이 입김이 풀풀 나와 욕조 곁에 온풍기를 켜두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장마철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우리집 주변은 재건축 열기가 뜨거워 여기저기 온통 공사중이었다. 침대가 없던 시절, 잠을 자고 있던 나는 난데없이 공중부양을 체험하게 됐다. 둥실둥실 떠다니던 내 몸을 보며 나는 순간 이것이 가위에 눌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유체이탈을 한 것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꿈이었을까? 나는 물 위에 부유중이었다. 아…… 이것이 침수로구나! 어쩐지 담담한 기분이었다. 방에 불을 켜보니 5센치미터도 넘게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고 나의 전재산이라고 할 수 있었던 컴퓨터 본체가 서서히 젖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맨 손으로 자동차를 번쩍 들어올렸다는 한 어머니의 심정으로 도움을 청할 새도 없이 맨 손으로 짐들을 번쩍 번쩍 들고 옮기기 시작했다. 작은 방에 나의 보잘것 없는 짐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나의 가슴엔 한숨이 쌓였다. 일주일이 지나 여기저기 곰팡이가 잔뜩 슬은 옷가지들을 보며 내가 느낀 건 진짜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거. 그래서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높은 옥탑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 시내엔 정말이지 옥탑방이 많다. 건물에도, 다세대 주택 옥상에도 방이 있다. 꼭대기라서 한적하고 나 혼자 옥상 공간 전체를 쓸 수 있어서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유독 옥탑방만 월세가 싼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초여름만 해도 시원한 바람이 온 집안을 관통했던 것과 달리 장마철이 지나자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열기가 온 집안을 감싸안고 떠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 에어컨이라도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안타깝게도 그 당시 가난함의 절정을 달렸던 나에게는 에어컨을 살 돈도, 유지할 능력도 없었다. 새벽의 선선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안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를 하고 결국엔 집밖으로 뛰쳐나가길 반복하던 그 때. 나는 왜 반지하를 피해 옥탑으로 왔는 지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리고 후회마저 절정에 다달았을 때 비로소 가을이 왔다.

이 시대의 자취방은 어디서든 이와 비슷한 모습 아닐까?

물론 하루가 멀다하고 사방팔방에서 쏟아져나오는 풀옵션 원룸들이 판을 치고는 있다해도 여전히 가난한 대학생과 근로자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사실 말이 풀옵션이지 다섯 평도 안되는 작은 방에 책상이며 침대며 온갖 가구 쑤셔넣어놓고는 다리 뻗고 잠을 자라고 하니 있으니만 못한 경우가 많다. 더불어 화장실은 또 얼마나 좁은가. 창문이 좁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실평수는 한참 모자르겠지만 열 평 넘고 살만한 집은 월세만 50만원에 육박하는 곳이 허다하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반지하와 옥탑방을 전전한다. 방은 하나지만 내 누울자리 하나는 확실하고 방세는 싸니까, 게다가 주인 아주머니만 잘 만나면 김치에 밑반찬에 인심까지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재수가 없으면 보증금을 떼먹히거나 분명히 월세임에도 불구하고 도배 장판 조차 새로 해주지 않아 곰팡내 나는 방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싸. 니. 까.

현재 나는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조금은 살만한 집에 자리를 잡았다. 굳이 따지면 옥탑이지만 나름 빌라라고 우길 수 있는 5층에 제법 넓은 방과 부엌과 다용도실과 욕실겸 화장실을 겸비한 화려한(?) 자취방이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살만한 건 아니지만 더 이상 여름마다 피시방을 헤매기 싫어 작은 에어컨도 하나 장만했다. 이 정도면 이제 자취가 아니라 독립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지독한 불경기는 그리도 착하던 우리 주인 아주머니마저 악독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매년 재계약을 할 때마다 방세를 올려달라는 협박에 나는 이번엔 또 어디로 이사를 가야하나 고민에 고민을 해야 하니 말이다. 주변에 속속들이 솟아오르는 아파트들을 볼 때면 나도 언젠가 돈을 모아 저런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 생각은 하지만 글쎄? 이 나라에서 그런 아파트에 살기 위해선 얼마를 모아야 할까?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전세살이를 하려해도 10년은 꼬박 돈을 모아야겠지. 아마 나는 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월세살이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라의 정책이 그렇다. 대학은 무조건 서울로 가야된다고들 하는데 학교 기숙사는 방이 넉넉치가 않고 주변 하숙집이나 월세방은 지나치게 비싸기 일쑤다. 고시원이라는 대안이 있지만 그곳에서 며칠이라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말도 하지 말것. 살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어떻게든 살아는지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 살아지는 거지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니. 학생들이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서울은 각박하다. 신도시엔 분양이 안 돼 텅빈 집이 그렇게도 많다는데 왜 우리들이 발 뻗을 곳은 늘 이런 곳이어야만 하는 걸까. 그나마 남아있던 다세대 주택들도 이제는 재개발이다 재건축이다 너도나도 부시기에만 바빠 점점 살 곳이 줄어들고 있다. 당신은 자취를 해봤는가. 그렇다면 어떤 집에서? 아마 자취방을 벗어나 제대로 좋은 집에 살고 있다면 아마 그때의 기억은 이미 산너머 물건너로 떠나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추억은?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었던 주차장의 그 작은 공간을. 없는 살림에 도둑까지 들어 유일하게 귀중품이라 여겼던 워크맨을 훔쳐갔을 때의 충격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던 낡은 집의 욕조를. 너무나도 더웠지만 동이 틀 때마다 그림 같은 하늘이 보이던 그 방 창문을. 그리고 넓다란 옥상에서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먹으며 나누던 이야기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취방의 로망? 그건 이미 그곳을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혹은, 집 편한 줄 모르고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며 울부짓는 그대들의 희망사항이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