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다만 당신의 뜨거운 열기 가득한 육체가 내 몸에 바짝 붙어 비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몸에선 땀이 흐르고, 그 미지근하고 질척이는 액체가 당신의 새하얀 와이셔츠를 적시고, 나의 몸을 적신다. 하지만 그 땀을 닦을 새도 없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막지 못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온 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채로 흐느적 거리며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들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하차한다. 주5일, 아침마다 30분씩 지하철에서 우리들은 이렇게 만나고 또 헤어진다.
1980년대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이래, 강남의 땅값이 오르고 교대-강남-역삼-선릉-삼성 구간에 우후죽순 마천루가 형성될 때즈음부터 지금까지 신도림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오죽하면 신도림역에서 미친척하고 스트립쇼를 한다는 노래까지 나왔을까. 강남으로 출근하는 서민들의 밀집 지역 중에 강서와 수도권 인천지역 거주자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출근하기 힘들어서 때려치워야겠다.”고. 정말이지 평일 아침에 신도림발 강남행 지하철 2호선을 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쩌면 이런 투정(이라기 보다는 오열에 가깝지만)을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끊임없는 연착으로 30분 거리를 1시간동안 가면서 느끼는 그 고통은 무박2일 야근 근무 후 택시타고 집에 가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아침 8 – 9시, 교대 – 강남 구간은 아침 출근시간 국내 철도 노선 중 최고의 혼잡률인 225%의 혼잡률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 수치는 언제 측정한 것인지 확인이 안 되므로 대략적으로만 참고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우리는 아침마다 정원의 세 배를 태운 지하철 그 협소한 공간에 몸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다는 이야기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가 살기도 부족한 그 작은 집에 새엄마 마녀에 왕 아버지에 사냥꾼에 가정부까지 쑤셔넣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평소 길을 걸을 때에는 지나가는 사람의 손만 스쳐도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겨드랑이에 머리가 끼어도, 누군가의 허벅지가 엉덩이에 닿아도 매일 매일 그짓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지하철은 혼잡한 시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스킨쉽에 관대한 마음을 품도록 만드는 공간이다. 지하철 의자는 알다시피 7명이 앉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보통 체격의 사람들이 앉을 때에 적당한 크기다. 간혹 체격이 큰 사람이 앉으면 남은 자리엔 앉기도 뭐한 공간만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나마 앉으려고 엉덩이를 들이미는 사람이 그냥 서있으려는 사람보다 많다. 살과 살을 부비대며 묵묵히 목적지를 향해 간다. 사실 그 정도는 약과다. 평일 아침 지하철에선 낯선 남자와 진도를 무시하기 일쑤 아닌가. 손도 잡기 전에 귓볼에 콧바람을 불고, 그의 품에 몇 분이나 얼싸 안겨있는 그녀들과 립스틱이 찍힌 와이셔츠를 입고도 담담히 회사로 출근하는 그들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A라는 여성은 지하철에서 정말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다. 역시나 붐비는 출근시간 2호선에 겨우 몸을 낑겨넣은 그녀는 운이 좋게도 자리에 앉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하철의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 자신의 앞에 서있던 남성의 사타구니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오히려 앉아있는 게 불편한 상황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늦가을이라 버버리 코트를 입은 그 사내가 자신의 바지 자크를 내리더니 그것(?)을 쑥 내밀더라는 것이다. 웃긴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버버리 코트에 가려진 그것을 본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A는 그때의 충격으로 두 번 다시 지하철을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한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렇다. 강남을 향해 질주하는 출근시간 2호선은 3류 에로티시즘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조만간 강서에서 강남까지 15분이면 간다는 9호선이 개통한다고 한다. 어쩌면 8시부터 9시까지 신도림에만 10만명이 밀집하는 그런 장관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강남으로 출근하는 40대 보험아줌마들의 등쌀에 밀려 자리가 나도 빼앗기는 일 없이 눈치 보지 않고 편히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끈적한 남자들의 숨결에서 벗어나 감지 않은 머리에서 혹여 냄새라도 풍길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 한 칸은 몇 평 정도일까? 그 공간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또 몇 명이나 될까. 어쩌면 남편보다, 와이프보다, 애인보다도 자주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그(혹은 그녀)가 있었을 것만 같다. 그 작은 공간에서 우리들은 평일엔 매일 아침마다 만나고 비비고 부비고 뜻모를 말들을 속삭였다. 조금만 주의 깊게 살폈더라면 30평생 생기지 않았던 애인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쩌나 이제 곧 9호선이 들어선다고 하니 절정의 에로틱 열차에 탑승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눈 부릅뜨고 “그” 사람을 찾아보자. 부디, 바지 지퍼를 다 내리기 전에, 그 끈적한 손이 당신에게 닿기 전에 경찰에게 인도할 수 있도록 단축번호 1번은 112로 등록해놓았기를.
끝으로, 어쨌거나 생존을 위해 아침마다 그 공간안에 발을 디뎌야만 하는 당신들에게는 토닥토닥 (손은 대지 않고) 위로를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