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한 꺼풀 벗겨진 것 같은 날씨였다. 여전히 더웠지만 바람에서 느껴지는 한기는 곧 가을이 올 거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밤이 깊어서 자동차 한 대 지나가는 소리도 요란하게 울릴 정도의 시간. 나는 신촌 어딘가의 포장마차에서 배실배실 웃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이가 아름다운 건, 내일이 두렵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두려움이 없으면 용감해진다. 세상을 다 알지는 못하나 다 알 것만 같았기에 겸손할 줄을 몰랐고, 어설픈 풋사랑의 경험 하나로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그리움을 쉬이 얕잡아 봤다. 내가 하면 너보단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고, 내가 너 정도의 나이가 되면 적어도 그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있었다. 비록 좁아터진 의자에 간신히 엉덩이를 걸치고 약해빠진 테이블에 몸을 맡긴 신세였지만 그래도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한없이 부끄러운 그 날들이, 그 시간들이 그립다. 요즘 나는 모든 게 막연하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두렵다. 막연함도 두렵고, 내가 두려워 하고 있다는 사실도 두렵다. 자꾸만 움츠려드는 나의 어깨가 두렵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도 두렵다. 용감하지 못한 나는 너보다 잘하지 못했고, 이미 너의 나이를 지나쳤음에도 너만큼 이룬 것이 없다. 대신, 나는 여전히 그 좁아터진 의자에 앉아있다. 포장마차도 나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자리에 있다.
나는 술은 가리는 것 없이 아무거나 잘 마시지만, 술집을 고를 때엔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이다. 특히 최신가요가 시끄럽게 주구장창 흘러나오는 술집에 질색하기에 화려한 네온사인이 쉴새 없이 깜빡이는 장소엔 애초에 발을 내밀지 않는다. 그래서 포차를 좋아했다. 지저분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고, 의자가 불편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포차를 고집했다. 세상에 나온지 30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라면 인생을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나를 친조카마냥 대해주는 이모들의 정감어린 말투에 마음이 끌렸다. 이룬 것 없이 가난한 내 삶은 화려한 서울 한구석에 조용히 천막을 펼친 포장마차가 제격이란 생각도 들었다. 돈 주고 산 땅은 아니어도 그곳은 포장마차 자리였다. 당장이라도 비워달라 하면 쫓기듯 옮겨가야겠지만 몇 년 째 포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빌어먹을 내 인생처럼 어떻게든 끝끝내 살아남은 그 공간도 여전히 빌어먹고 있으니 완벽한 한쌍 아닌가. 한여름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뎅국물 냄비와 신선해 보이지는 않으나 신선한 것처럼 데코레이션 된 해산물들, 제대로 닦긴 한 걸까 의심스럽지만 이미 입 안을 들락거리는 숟가락과 한없이 멀게 느껴지는 화장실(왜 그곳엔 늘 휴지가 없는가.)…… 하나 같이 구질구질하고 낡은 것들의 하모니. 그래도 실망하지 않는 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장마차와 나의 인생이 정말 닮았다면 말이지 ! 이렇게 내 인생도 뻥 뚫려있다면 좋을 텐데 , 비록 칠흙 같은 어둠에 휩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막혀있진 않잖아 ?”
담배 한 가치를 손에 들고 아무데나 서슴없이 재를 털며 이야기에 열중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봤다. 주변이 너무 환해서 별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머리 위가 뻥 뚫려 있으니 속이 시원했다. 한여름의 포차는 포장이 없으니 그냥 마차라고 불러야 할까? “포장마차와 나의 인생이 정말 닮았다면 말이지! 이렇게 내 인생도 뻥 뚫려있다면 좋을 텐데, 비록 칠흙 같은 어둠에 휩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막혀있진 않잖아?” 나의 질문에 술에 절어 속칭 꽐라가 되어 있던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야 이년아, 포장마차는 돈이나 벌지. 넌 인생이 뻥이야, 이년아.”라고.
그런데 얼마 전, 7년동안 애지중지 했던 포장마차 소리 없이 사라졌다. 가족처럼 친근했던 이모는 나에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 재탕에 삼탕까지 해도 절대 맛이 변하지 않았던 기름진 참치 김치찌게와 간장맛으로 먹는 밀가루 부침개도 함께 떠났다. 텅 비어버린 그 자리를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여름이 지나가고, 나의 20대가 거의 다 사라져가는 지금, 포차가 사라졌다. 나의 과거를 먹고 자랐고, 내 덕에 돈도 벌었을 포차가 자리를 비우고 떠났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던데 떠나버린 포차의 뒷 맛은 씁쓸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포장마차라는 건 언제든 떠나라고 바퀴도 달렸거늘 , 그래서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유목민 신세인 것을 …… 왜 언제나 ,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 거라고 믿었던 걸까 .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나는 불가능한 영원불멸을 원했던가 보다. 미련하게 20대 초반의 파릇파릇 했던 기억들을 붙잡고서. 이제 나도 슬슬 떠날 때가 된 걸까. 야속하게도 라디오에선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이 흐르고 있다. 내가 두려워 했던 것은 막연한 나의 미래가 아니라 그 미래에 발을 디디지 못한 용기 없는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