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표를 내 던지고 나온 회사에 처음 면접을 보러 간 날이었다. 3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그 사무실은 어쩐지 조금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네모 반듯하고 사방에 날이 선 빤딱빤딱한 건물들 보다는 다정한 분위기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상은 훨씬 더 차가워 보였다. 지은지 족히 20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은 이곳저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다. 닳아버린 시멘트 외벽에 위태롭게 붙어있던 색이 바랜 타일이 금방이라도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다. 만약 이곳이 사무실이 아닌 정말 일반 가정집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낡은 옷을 걸친 어린 아이들이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앉아있을 것이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 건물이 홍대에 있었더라면, 이 느낌 그대로 빈티지 카페가 문을 열었겠지… 분명, 그랬을 것이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던 외부와 달리 사무실 내부는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다. 다만 구조 자체가 애초에 주거를 위해 만들어졌던 만큼 필요 이상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벽이 많아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책상들은 좀 더 다닥다닥 붙어있어야만 했다. 어쨌거나 그 날 면접을 보고나서 이틀 뒤에 나는 그곳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겉모양이 다를 뿐이지 회사 안의 분위기는 다른 곳들과 다를 게 없었다. 내 자리라고 주어진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가 놓여있었고 누군가의 손 때가 묻은 전화기가 그 옆을 지키고 있었다. 방 안은 공간에 비해 부족한 창문 탓인지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놔야만 환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 않고 사무실 안에만 있으면 비가 오는지 해가 내리쬐고 있는지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땅 속 깊은 곳 개미굴에 갇힌 것처럼 모두가 그 닫힌 공간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타닥타닥 타이핑 하는 소리와 어디선가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어지럽게 불협화음을 이루며 사무실 안을 둥둥 떠돌아 다녔다. 아마도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기묘한 느낌의 사무실이 아닌, 강남 한복판의 웅장한 건물 중 어느 사무실이라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일 것이다. 사무실이란 공간은 햇빛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중충한 블라인드나 짙은 색 선팅지가 작은 빛까지도 모조리 가로막고 있다. 대개의 경우 컴퓨터 작업에 방해가 될까봐 취한 조치겠지만 나는 문득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김혜수)이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백화점에 창문 없는 거 몰라? 해뜨는 거 보면서 화투 치고 싶겠어?”
하긴, 어느 누가 화창한 바깥 날씨 보면서 일을 하고 싶겠는가. 바깥 세계와 완전히 격리된 공간 안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해가 뜨는지 비가 내리는지도 모른 채 일에 매달린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자면 누구나 외로워 진다. 마치 광활한 우주 한 어딘가에 자리 잡은 작은 별에 혼자인 것처럼. 의미도 모른 채 하루 종일 별을 뱅뱅 돌면서 가로등을 켜고, 끄기를 반복하던 <어린 왕자>의 가로등 지기처럼. 쉼 없이 움직이고 있어도 대체 그 일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일들은 애초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일들은 ‘돈’이란 그럴 듯한 보상을 들이민다. 그리고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그것이 꿈을 버린 댓가인 줄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돈을 받아드는 것이다.
차디 찬 에어컨 바람을 피해 사무실 밖으로 나가 낡아빠진 난간에 잠시 앉아 있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나와 담배를 입에 물고 무거운 연기를 내뿜는다. 가뜩이나 더러워 보이는 타일 위로 담배 재가 소리도 없이 쌓여 간다. 그 담배 한 대가 다 타들어 가는 동안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언젠가 놓쳐버린 자신의 꿈을 찾고 있을까?
그 회사를 탈출하던 날, 나는 그제야 다시금 지구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가로등이 꺼지지 않았던 어두운 작은 별이 아닌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달이 뜨는 비가 내리고 꿈이 있는, 살아있다는 활력을 느낄 수 있는 진짜 삶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어떤 보상도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 또한 괜찮다. 나는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