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건물을 바라본다. 어제까지도 손님을 맞고 사람이 머물던 곳이고 수십년동안을 이 거리의 얼굴로 있던 건물이 이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그 안과 밖에서 삶을 이어왔다. 아무리 볼품없이 초라한 건물이라 할지라도 그것과 함께 기억된 우리의 지난 추억까지 의미없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고없는 소나기를 피해 저 건물 안으로 뛰어든 행인이 한 둘이 아닐텐데, 건물이 철거됨과 동시에 우리의 기억도 함께 소실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도시 속에서 폐기처분되는 건물.
왜, 내일 곧 철거될 건물에 낙인까지 찍어야 하나?
몇년 전 아버지께서 자식들의 극성에 못이겨 차를 바꾸셨다. 새 차가 오는날, 10년이 넘게 타 온 소나타는 우리 가족의 눈 앞에서 폐차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구입했고 10년을 아버지의 인생과 함께해온 차가 찌그러지고 부서지는 모습을 아버지는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듯이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셨다.
기능을 다한 건물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도시 성장의 과정에서 지극히 당연한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과 정서가 이런 자본의 논리에 익숙하게 길들여져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횡포이고 폭력일 것이다. 철거되어 없어질 건물이라 하더라도 서있는 오늘까지는 도시의 일부이며 시민의 환경인데 이전과 똑같이 서있는 그것에 무법천지의 낙서와 파괴가 가림막 하나 없이 있는 그대로 전시된다는 것은 야만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건물은 온통 시뻘건 “철거 X” 라는 낙서로 더럽혀진 채, 길거리에 버려져 있다. 어제까지만해도 저 건물의 그늘 아래서 누군가는 인생의 꿈을 꾸었고, 비바람을 피했으며 운명적인 인연이 이뤄졌을지 모르는데 이제 그 모든 기억을 지우라는 듯, 낙인을 찍어 거리에 걸어 놓은 것이다. 단순히 폐기처분 될 콘크리트 덩어리에 ‘넌 이제 쓰레기야!’ 라는 의미의 낙서를 한 것 뿐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과 함께 한 공간이고 장소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거의 모든 것이 돈의 흐름을 타고 따라갈지라도 인간의 감정까지 그 논리에 맞추어 합리화되고 정형화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재개발의 경제논리와 인간적인 삶의 정서는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미디어를 통해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그렇다. 재개발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재개발로 인해, 공간과 장소에 쌓아온 공동의 흔적과 기억들이 모두 일순간에 사라진다는 사실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늘날 고도로 발전한 건축기술 덕에 하루 아침에 새로운 도시 공간을 만들내는 속도전이 가능해졌다 하더라도, 우리의 기억과 감정은 그렇게 단시간에 지워지고 치유될 수 없다. 인간에게 죽음과 같은, 사라져서 다시는 볼 수 없는 단절된 상태는 정신적인 쇼크이기 때문에 오로지 시간을 통해서만 치유가 가능하다.
학창시절 점심시간, 반찬을 뺏고 뺏기는 전쟁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 도시락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하다가 확실한 방법을 찾아낸다. 내 도시락에 침을 뱉는 것이다. 내가 먹을 밥에 침을 뱉었을 뿐이니, 내가 손해볼 일은 없다. 하지만, 자기 도시락에 침을 뱉은 나 하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 행동에 역겨워한다. “에이, 치사하고 더러운 놈!”
이 세상의 모든 건물에는 주인이 있으니 ‘ 내 건물에 침뱉기’ 가 점심 도시락처럼 가능할까? 대로변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이런 ‘침뱉기’ 가 부끄러워 해야 할 행동이며 이 거리를 걷는 모두에게 불쾌한 행동임을 자각해야 한다. 밥이야 먹는 놈의 똥이 되면 그만이지만 건물은 도시 공공의 자산이며 얼굴이다. 건축물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사람에게 향유되어야 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이 점이 학창시절 책상 위에 올려놓은 도시락과는 다른 우리 주변의 건축물에서 발견해야 할, 공공의 의미인 것이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건, 그 대상이 사람이건 아니건, 최후를 맞는 순간 앞에선 경건함을 갖추는 것이 예의다. 낡고 초라한 콘크리트 더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보내기 전에 따뜻한 인사 한마디 나누면서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과 과정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안녕, 나의 도시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