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타워>는 원작소설의 명대사들이 영화 곳곳에서 관객을 깨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와닿는 것이, 시후미의 남편이 자신의 부인과 내연의 관계인 토오루를 수영장 물 속으로 밀치면서 하는 대사다.
“사랑은 빠진다고 되는 건 아니야!”
토오루의 친구인 코지와 유부녀 키미코와의 욕조 정사신에서 카메라는 그들의 동선을 따라 욕조 속으로 들어간다. 월풀 욕조의 수면 아래에서는 두 사람의 욕정과도 같은 공기방울들이 힘차게 끓어 오른다.
우리 주변을 메우고 있는 공기와 욕조 속의 공기방울은 다른 것이다. 공기가 아닌 물로 채워진 욕조 속에서 공기는 방울방울이 생명력과 존재감으로 요동치면서 솟아오른다. 우리의 일상은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처럼 항상 주변에 있어왔지만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반해, 일탈이란, 수중의 공기방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중년의 시후미에게 다가온 사랑이란, 대기 중의 산소처럼 삶을 위한 것이 아닌, 질식할 것 같은 아찔한 순간의 숨 한모금처럼 위협적이지만 짜릿한 것이다. 주변에 놓인 모든 것들과 격리되는 순간이면서,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두 사람의 욕조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 대기를 통해 전달되던 소리는 먹통이 되고 공기 방울이 솟아오르면서 내는 소리만 가득찬다. 공기를 통해 전해듣던 소리가 아닌 ‘공기’ 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표현할 때 ‘빠진다’ 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 말은 사랑의 지속성이나 현실적 무게를 고려하지 않은, 단지 현재의 감정에 도취되었을때 쓰는 표현이다. 시후미의 남편이 토오루에게 이런 일시적이고 일탈적인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친구인 토오루와 사랑에 빠진 시후미, 이 둘의 사랑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심해에서 솟아오르는 공기방울도 결국은 수면에 닿아 하늘로 사라진다. 욕조 속에서 끓어오르는 기포가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 보게 할 수는 있지만, 일상이 되어 줄 수는 없다. 숨쉬기 위한 공기와 바라보고 느낄 수 있는 공기는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삶을 되돌아보게 하지만 그 속에 영원히 빠져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것인지도 모른다. 물 속의 풍경이 황홀경일지라도 우리는 숨쉬기 위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야만 하니까 말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토오루와 재회한 시후미.
토오루 : 와줬군요. 다음 역까지
시후미 : 이제 내릴 역이 여기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일 네 마음이 멀어진다해도 사랑해.
그들의 사랑은 “지금” 이라는 이름의 역에 잠시 정차해 있다. 언젠가 열차는 출발할 것이고 둘의 여행이 다음역까지 어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년의 여인에게 사랑은 시간이라는 열차에 동행하는 여정과 같다면, 젊은 토오루나 코지에겐 잠쉬 쉬어가는 간이역에서 발견한 보기좋게 펼쳐진 풍경과도 같다. 간이역의 풍경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이 역에서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을까? 이 순간 두사람은 서로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