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에서 에라스무스 브릿지(Erasmus Bridge)를 건너 LUXOR 극장을 지나 계속 걷다보면 물길 옆으로 잔디밭이 있는 공원이 나온다. 나무가 별로 없어 그늘도 거의 없는 잔디광장에서 물길을 바라보며 잠시 벤치에 앉아 쉬어간다. 어딜가도 수평선과 지평선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이곳의 풍경에서 나무그늘조차 없는 공터는 마음을 더욱 허전하게 만든다. 원경의 건축물들을 카메라로 훑고난 후, 마땅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결국 내가 앉은 벤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건축물의 내외부에서 고채도의 색채가 과감하게 뿌려지던 것과 대조적으로, 도로의 환경시설물은 그레이톤의 심플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살짝 솟아오른 곡면의 볼륨감이 추가되었을 뿐인 단순한 형태의 벤치. 하지만, 조각없이 한판의 통석으로 석재 덩어리의 묵직한 느낌을 그대로 살려주고, 등받이의 경우 스틸을 같은 곡선으로 접어서 붙였다. 같은 곡면을 가지고 있지만, 바닥판의 통석은 석재의 물성을 살려 덩어리(solid)로, 등받이 철재는 속이 빈 반쪽짜리 면으로만(void) 표현하였다.
단순한 형태를 반복하여 사용하면서도 재료를 달리하고 재료에 따른 물성을 고려하여 디자인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