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인터내셔널>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 분량만으로도 충분히 ‘인터내셔널’ 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각지의 유명건축물을 배경으로 촬영하였기 때문에 시종일관 눈이 즐거운 영화이지만, 워낙 건축이란 것이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리 있다보니 국내에선 그다지 흥행하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상영을 마쳤다. 영화 내내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는 데다가 액션보다는 음모 자체에 집중하는 범죄 스릴러이다 보니 심심풀이로 가볍게 보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건축에 관심이 있거나 건축전공자라면 이 영화를 가볍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근대건축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구게하임 미술관은 건축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디자인에 있어 조선 백자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는데, 건축전공자에겐 근대 건축가가 구워낸 대표적인 유물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 인터내셔널>은 이 구겐하임 미술관 안에서 총격전을 벌이는데 원통의 아트리움 공간이 총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으로 메아리 치고 총알이 하얀 콘크리트 표면에 흠집을 내고 박힐 때,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전율이 느껴질 만큼 박진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마 이 커다란 백자를 세트로 제작하진 않았을텐데, 곳곳이 부서지고 금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영화 속의 현실에 어쩔줄 몰라하며 가슴을 조리게 된다.
‘거기가 어디라고 총질을 해대고 난리야!’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나선형의 슬로프(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벽면의 전시물을 관람하는 구조로 되어 있고, 이는 건축물의 입면에도 표현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나선형의 슬로프가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넒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중앙의 아트리움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 인터내셔널>의 총격전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주인공이 자신보다 위 층에 (슬로프 상 위에) 있는 저격수를 피해 무사히 미술관을 빠져나온다는 점인데, 구겐하임의 구조상 이런 상황이 가능하려면, 두가지 조건이 동시에 성립되어야 한다.
주인공을 쫓는 적이 총격전 이후 한명만 살아남았어야 하고, 주인공은 적을 위에 두고 바로 밑에서 그의 움직임을 따라서 이동해야 한다. 적이 두 명 이상 살아남았거나, 슬로프의 단면상 다른 위치에 있게 되면 곧바로 표적이 되어 버린다. 구겐하임의 나선형 동선 계획이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물론, 영화에선 주인공이 어떻게 저격수들을 피해 미술관을 빠져나오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으니, 구겐하임의 독특한 구조를 통해 본 < 인터내셔널>의 ‘옥의 티’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이 살아서 미술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건축에 무지몽매한 저격수 덕분이건, 주인공의 뛰어난 공간 이해력 덕이건간에 건축이 한 몫을 하고 있음은 확실한 사실이다. 영화< 인터내셔널>은 구겐하임을 비롯한 세계 유명 건축물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만큼 건축이 대중적인 문화 코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겐하임의 총격전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건축이 때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최초의 건축은 은신처(shelter)로서 시작되었다. 사람에겐 생존을 위한 은신처가 필요했다. < 인터내셔널>에서 구겐하임은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근대건축물답게 쉘터(shelter)로서 배역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 인터내셔널>에서 공간이 펼치는 현란한 연기에 취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