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에는 검정/노랑의 안전띠가 둘려져 있고 빨강색으로 선명하게 “광고물 부착금지” 라고 적혀 있다. 저 위에 무언가를 붙여서 안전띠를 가리는 짓은 일단 범법행위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봇대의 안전띠 위에는 너덜너덜해져 이미 쓰레기 더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경고문이 노끈으로 질끈 묶여 있다. 결코 보기 좋지 않는 손글씨의 내용은 “제발 쓰레기 버리지 마시요.” 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쓰레기 이고 어디서부터가 우리의 공공인 것인지 그 기준을 잡기 어려운 장면이다. 볼일 급한 똥개도 저 전봇대는 피해갈 것 같다.
(뒤에 있는 “주차 홍보판” 이라는 것은 또 어떤가? 과연 ‘홍보’라는 단어가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긴 또 나무 허리 춤에 경고문이 있다. 노끈으로 동여맨 하얀 종이 위에 친근한(?) 손글씨로 “양심 불량으로 살지마세요. 신고할 겁니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정말 화났씀 x 4″. “정말 화났슴” 의 곱하기 4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이 경고문이 4번째로 업데이트 됬다는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어찌됬건, 동네 한 구석에 쓰레기가 쌓일수록 이웃 간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는 사실을 ‘곱하기 4′ 만큼 느낄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경고문 중 대부분이 감정에 호소하고 양심을 이야기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질서를 우선시 한다고 볼 수도 있겠고, 시민사회가 성숙해가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쓰레기 불법 투기 금지” 이렇게 간단히 쓰나, “양심불량으로 살지 마세요. 신고할 겁니다…..” 이렇게 길게 적나, 어차피 버리는 사람은 자신의 범법행위를 자각하면서도 그 짓을 하고 있을텐데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인간적인 감정을 기대하고 상처받는다.
투기자의 양심에 호소하기 보다는 내 집앞에 경고문이 쓰레기와는 구별되도록 산뜻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내 집 앞에 경고문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동네 전체가 각박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쓰레기 투기가 일어나는 자리에 꽃을 심고 화단을 꾸미면 어떨까? 경고문에 곱하기의 압박을 가하는 것 보다 쓰레기가 쌓일만한 음침한 구석자리를 없애는 편이 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버리는 사람의 감정과 양심, 시민의식을 자극하기 위해선 이성적인 경고문보다 감성을 일깨우는 방법을 써야할 것이다.
쓰레기는 쌓일만한 곳에 쌓인다. 아름답지 않은 경고문은 보기에 따라 공해의 일부가 된다. 노끈을 풀고 꽃 한 송이 심어보는 것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