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을 따라가다보면 독특한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성곽’ 이라는 문화재의 특성때문인지, 달동네까지 개발의 손이 닿지 않아서인지, (성곽 주변의 일부 주거지의 경우, 건물만 개인 소유일 뿐, 대지는 서울시의 것이라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성곽 주변은 시간이 더디가고 있는 듯,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많다. 아련한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이 곳에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이 곳에서, 문패도 없고 (전기)계량기도 없는 집을 발견했다.
‘왜, 이 집엔 사람이 살지 않을까?’
‘그래, 이 달동네 비탈길을 오르내리는 일이 쉽지는 않을거야! 오래된 집이니 불편한 게 한 두가지 겠어? 화장실에 양변기도 없을테고, 수도물도 제대로 나올지 모르는 일이고, 여름엔 비 새고, 겨울엔 춥겠지. 집을 고쳐 쓸라 쳐도 이런 달동네에 누가 공사를 하러 오겠어.’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이 집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이미지가 제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도시의 추억을 그리는 화가이거나, 노래하는 시인이라면 어떨까? 이 도시로부터 영감을 얻어야 한다면, 이곳보다 좋은 작업장도 없을 것 같다.
불과 일이십년전까지만 해도 집을 고를 때, ‘전망‘은 그다지 고려할만한 요소가 되지 못했다. 한강에 면한 달동네가 아파트로 재개발되고, ‘한강의 르네상스’ 라는 말이 매스컴의 단골로 등장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집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치관은 강산이 변하는 속도만큼이나 큰 폭으로 변해 왔으니, 앞으로의 주거 트렌드가 어떻게 변할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내가 내려다보이고 문화재로 둘러쌓인 한적한 산책길을 곁에 둔, 이곳에 주인이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질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편의를 제공하는 집은 많지만 영감을 주는 집을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삶을 고단한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집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삶을 즐기려한다면 오르막길을 오르며 마주치는 골목길의 모습들과 앞마당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울의 산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더 어울릴 것이다.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계량기를 달고 문패를 걸어 볼 수 있나? 이 집만이 당신에게 그런 희열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