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의 제목, “파주”. ‘파란의 러브스토리’ 와 파주라는 도시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영화를 만든, 박찬옥 감독은 중식(이선균 분)과 은모(서우) 두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파주라는 도시에 배치시켰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파주가 끼어든 이유가 무엇이지 생각해 보자.
은모의 “파주”
영화는, 고향 ‘파주’로 돌아오는 은모(서우 분)를 비추면서 시작한다. 어둠이 내린 도시, 떠나기 전의 그 곳은 없고, 온통 유흥가로 변해버린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개발되기 전에 유흥가가 먼저 들어서는 이유가 뭔지 알아?” 택시 운전사가 말을 건낸다. 그렇다. 은모의 파주는 개발의 그림자 아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변해 있었다. 어두운 밤길, 합승한 낯선 남자보다도 변해버린 도시가 낯설고 두렵다.
은모는 파주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이 물려준 땅과 집이 있었고,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갈 생각이었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어느 순간, 자신을 떠나 보낼까봐 먼저 그를 떠났다. 그렇게 파주를 떠났었다. 하지만, 사랑은 지워지거나 변하지 않았고 결국, 파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엔 중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변해버렸지만, 한결같이 은모를 기다려 온 중식. 도시는 변하지만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은모에게 파주는 그런 변함없는 사랑, 중식의 공간인 것이다.
중식의 “파주”
중식의 사랑은 항상 고통스럽다. 그의 사랑은 항상 잔인한 파국이 뒤따른다. 첫사랑도 잔인한 기억으로 남았고 결국, 쫒기듯 파주에 왔다. 지금까지, 정착할 수 없는 도피자의 삶을 살던 그였는데, 파주는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기댈 것 하나 없는 파주에서 들판에 꽂힌 허수아비처럼, 홀로 남아 은모를 기다린다. 철대위(철거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자청하며 자신의 고향도 아닌, 파주를 지켜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떠돌이처럼 살던 그가 아닌가? 미련없이 떠나면 그만인데 무엇을 위해 싸우나? 중식에게 은모가 묻는다. “이런 일 왜 하세요? 이런 일이 형부에게 보람되세요?” 중식은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은모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켜서 쑥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린 사랑이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인지…. 중식 개인에게 파주는 객지일 뿐이지만, 은모의 고향이며, 두 사람이 만난 곳이며, 기다리면 은모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중식에게 파주는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 보상받을 땅도 집도 없는 파주에서 철거민을 위해 싸우는 중식. 운명처럼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의 굴레,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중식에게 사랑이란 먼저 말하면 날아가 버리는 존재였기 때문에 은모에게 자신의 사랑을 말할 수도 없다. 단지, 그녀를 기다릴 수 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 그녀의 도시를 지켜내야 한다. 어쩌면, ‘개발되는 도시’, ‘변하려는 도시’가 아닌, 변해버릴 사랑, 떠나갈 것 같은 사랑에 맞서 너만은 변하지 말아달라고, 내게 남은 전부라고 절규하며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찬옥 감독의 <파주>
박찬옥 감독은, 두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묻자,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사랑을 연기할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다. 도시가 변하는 듯, 두 사람도 나이를 먹고 늙어가지만, 둘의 사랑만은 처음 그대로 파주에 있었다. 두 사람의 나이와 상황이 변하고, 도시가 개발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식은 파주에서 교회 공부방을 맡아 가르치게 되고 은모는 이곳의 학생이었다. 파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중식은 경찰에 쫒기는 운동권 학생(대학생)이었고 은수(은모의 언니)를 만나 결혼하게 되고, 사고로 은수가 죽자, 처제인 은모와 가족을 이뤄 살게된다. 청년이었던 중식은 어느덧 중년이 되고 은모의 보호자가 되어 심리적으론 장년의 정서까지 담아낸다. 감독은 이런 이유로 중식의 역에 이선균을 떠올렸다고 한다.
은모는 철없는 소녀였다. 그녀에게 중식은 공부방 선생님이었으며, 형부가 되었고,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철부지 소녀가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영화 속에 고스란이 투영되어 있는데, 중식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파주가 배경이 되는 이유도 같다. 어느 도시, ‘파주’가 아니라 개발의 논리 속에 삶의 흔적을 묻어가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도시의 이야기인 것이다. 청년이었던 중식이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교복입고 뛰어다니던 철부지가 여인이 되어 돌아왔고, 그 7년의 시간 동안 고향집은 도시계획에 의해 공원이 조성될 녹지지역이 되어 버렸다. 우리 모두가 늙어가고 변하듯 도시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하지만, <파주>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영화는,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중식과 은모, 둘의 사랑처럼 이 도시에 변함없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은모와 중식의 사람처럼 우리 도시 안에도 변하지 않는 무엇이 존재할까?
박찬옥 감독의 <파주>는 ‘파란의 도시’ 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이 도시를 무엇으로 기억할 것이며, 이 도시엔 무엇이 남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