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 브릿지를 건너면 강렬한 빨강의 룩소 극장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암스테르담의 Sporenburg 과 Borneo, 이 두 지역을 잇는 다리(Borneo Sporenburg Bridges) 역시 빨강. 피보다도 진할 것 같은 선명한 빨강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어떻게 저리도 과감하게 붓질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또 그 강렬함이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룩소극장을 우드락(건축모형을 만드는 스트로폼 재료)이나 발사(모형 제작용 목재)로만 만들어 놓고 본다면 어떨까? 디자인이란 것이 원채 총체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공간을 계획하는데 있어 초기부터 색채가 빠진 채로 진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형태를 만든 후에 색을 입히면 그만이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오늘날의 네덜란드 건축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네덜란드의 자연환경이 이런 랜드마크적 건축을 요구했다고 할 수 있지만, 건축 외관에 있어 형태만큼 색채가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에라스무스 브릿지를 건너와서 룩소극장을 지나서, 오던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샌드위치 판넬로 마감된 학교 건물이 보인다. 회색과 핑크가 불규칙하게 조합된 것이 인상적이다. 자세히 보면, 색채와 형태가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색채는 형태적인 컨셉을 극대화시키면서 샌드위치 판넬의 지루한 마감을 감추고 있다. 또, 건물 측면에 붙어 있는 싸인 및 현수막도 건물 외장의 색상을 감안하여 계획되었다는 점도 예상할 수 있다.
건축물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은 건축물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색채는 단순히 ‘마감’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시스템’ 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통일된 색채계획이 아니고서야 색채는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아래 왼쪽 사진은 암스테르담 도심의 바이엔코프(de Bijenkorf) 백화점 내부 중정에서 찍은 것인데, 우리나라 백화점에 비하면 뭔가 모르게 심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백화점 정기 이벤트 같은 것을 하는지 내부의 모든 광고물 및 설치물이 연두색으로 통일되어 있기 때문인데, 잠시 이곳을 지나쳐 나왔을 뿐인데도 연두색에 대한 인상은 강하게 남아 있다. 색이란 너무 복잡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단순하게 한 두 개로 정리하여 체계적으로 배치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오른쪽 위는 암스테르담 역 안의 화장실 안내 싸인을 찍은 것이다. 역사 내부가 전체적으로 무채색인 가운데(쓰레기 통도 회색인 점을 보시라) 싸인의 글씨에만 파란 색이 선명하게 들어가 있다. 싸인 안에는 조명이 들어가 있는데 전체 싸인의 바탕이 약간 노르스름한 것은 조명 빛 때문인 것 같다. 파랑의 보색이 노랑이니 노란 조명 빛이 파란 글씨를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셈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건축에 색채가 적극적으로 활용된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소규모의 주거입면이나 카페 현관 등 작은 곳에서도 과감한 색채 디자인이 적용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정말 소소한 것까지 예쁜 색감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네덜란드인, 이들의 천성부터가 색채를 아는 사람인가 보다!’ 이런 생각마저 든다.
맨 위에 사진에서 봤던 빨간 다리 너머의 주거단지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어느 집 앞마당에 놓여있는 빨간 목재의자 하나를 발견했다. 따뜻한 햇볕 아래서 초등학생이나 겨우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작고 낡은 의자에 벙어리 장갑 한짝이 놓여 있었는데, 마치 디스플레이 해 놓은 것처럼 예뻐, 설치 미술품처럼 보였다. 이런 환경이 아이를 디자이너로 키울 것이며, 이런 아이가 네덜란드를 디자인 하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