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없는 강남역.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새벽 5시. 이른 새벽부터 쏟아진 호우가 강남역을 씻어냈나보다. 젊음으로 들끓었을 어제(성년의 날)의 기억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인적 없는 강남역. 비오는 새벽녘이 아니고서야 이리도 차분한 모습을 볼 수 있겠나! 우의를 꺼내입고 강남역을 나섰다.
만남의 장소, 6번
강남역 만남의 장소로 몇 번 출구가 가장 인기 있을까? 6번 출구 또는 뉴욕제과 앞은 강남역의 얼굴이라 할 만큼 만남의 장소로 유서깊은(?) 곳이다. 강남역 뉴욕제과 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이곳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최근엔 예전 타워레코드 자리인 지오다노 매장 앞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고 있지만, 아직도 지하철 출구앞에서 서서 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은 이곳 상권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은 1978년 3월에 착공, 1984년 5월에 개통되었으니, 강남역이 ‘강남역’이라 불려진 것이 올해로 26년째인 셈이다. 강남역의 상권은 왕복 12차선의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나뉘어 있고, 동시에 관할행정구 또한 강남구와 서초구로 나뉜다. 우리가 강남역이라 부르는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론, 서초동 이거나 역삼동이다. 그렇다면…
강남역 지하상가는 서초구 관할일까, 강남구 관할일까?
지도상으로 봤을때, 도로 밑에 있고 강남구와 서초구의 접경이고보니 지하상가도 동서로 관할구역이 나뉘는지, 강남역 지하상가의 주소지가 궁금해졌다. 강남구청 홈페이지(http://www.gangnam.go.kr/)에서 인터넷위치안내시스템(http://gis.gangnam.go.kr/index.asp)을 통해 강남역의 주소를 확인해봤다.
- 지번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804
- 도로명 :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지하 303
- 행정동 : 역삼 1동
- 건물명 : 강남역
- 분류 : 1종 근린생활시설
- 우편번호 : 135-080
- 지상 0층, 지하 1층
지상층이 없는 지하 1층의 건물, 강남역?! 강남역 지하는 역삼동에 속해 있었다. 지하상가 전체가 그런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강남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강남역 지하상가의 주소를 묻자 역삼동으로 확인된다는 답을 받았지만 지하상가 전체가 강남구에 속해 있는 것인지 재차 묻자, 지하상가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http://www.sisul.or.kr/)에서 관리하며 자세한 사항은 강남 지하도 상가 관리소에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며 전화번호(2290-6534)를 일러주었고 이곳에서 또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남역 지하상가는 주소상 전역이 역삼동에 속해 있지만 환경개선 분담금 등 몇가지 세금에 대해선 동서 지역을 분할하여 각 관할구청에 나누어 납부한단다.
사실, 강남역이라는 이름이 이 지역 상권 전체를 일컽는 말로 쓰인다는 것은 흥미롭다. 신촌이나 명동, 압구정…. 대부분의 번화가들이 지하철역과는 별개로(독립적으로) 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강남역의 상권을 “강남” 이라고 부르는데 무리가 있다. 생각해보면 “강남역” 이라는 이름부터가 웃기다. 거꾸로 “강북역” 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강남역 지하상가엔 무엇이 있을까?
한때, 이곳 지하상가에는 레코드점만 네댓 개가 있었다. (90년대 초반)중고등학교 때만해도 음반을 구하기 위해 강남역을 자주 찾았었다. 분수대에 걸터 앉아 친구를 기다리면서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최신곡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분수대도 노래도 레코드점도 친구도(이젠 친구들을 만날때 강남역을 찾지 않는다) 없다. 대신, 최신 휴대폰을 공짜로 준다고 뻥치는 가게들과 광고판 속의 아이돌이 이곳을 채우고 있다. 더이상, 미군방송을 녹음한 테잎을 들고와서 이 노래의 가수가 누구냐고 물어볼 수 없게 됬다. 레코드 점 대신 아이돌이 있을 뿐이다.
시간만 잘 맞추면 분수도 구경할 수 있었던 분수광장은 분수대가 사라지고 천정에 “들치기 주의” 라는 경고판과 “만남의 장소” 라는 안내판이 나란히 메달려 있다. 앉을 자리는 몇개 더 생겼는지 몰라도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누가 ‘들치기’ 하나 지나가는 사람만 의심하게 된다.
- 들치기 : 남의 눈을 속여 날쌔게 물건을 훔쳐 들어내 감. 또는 그렇게 하는 사람.
세상은 변하는 것 하나 없이 그 자리인 것 같지만, 우리가 잠깐 한눈 팔 동안 어느새 신천지로 변해있다. 세월따라 변하는 것 하나 없다면 추억이란 것도 별 가치가 없을지 모른다. 강남역 분수대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비릿한 그곳을 누가 추억이나 하겠나!
나무 마루에 왁스질하고 목탄 난로에 주전자 올려놓고 그렇게 보냈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라고 부르지만) 시절만 하더라도 좌측통행은 법이고 진리였는데, 세상이 어느새 좌측통행을 좌파(?)로 몰고 이제부턴 오른쪽으로 다니라고 말한다. 학교 계단에 붙어있던 좌측통행 스티커가 떠오르지 않나! 세상은 참 빨리도 바뀐다.
디자인 서울, 강남역
7번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7번 출구 뒤로 삼성타운이 보인다. ‘디자인 서울 거리’ 사업으로 조성된 흑백 스트라이프 패턴의 화강석 인도도 함께.
‘디자인 서울’ 이라는 구호아래 ‘유비쿼터스 거리’ 를 꿈꾸며 조성된 강남역의 거리. 강남대로를 따라 약 760m 구간에서 I.L.B(소형고압블럭)이 철거되고 화강석 바닥이 깔렸다. 처음엔 예뻤다. 디자인을 밟고 다니는 기분. 하지만, 거칠게 가공(정다듬:석재면을 가공하는 방법 중 하나)된 흰색 석재 마감면이 얼룩덜룩 흉하게 바뀌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이거리를 어쩐다! 저 어룩진 스트라이프를 어쩐다! 빗물에도 닦이지 않는 ‘디자인 거리’를 보면서 ‘디자인의 수명’ 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다이아몬드는 광채가 아름다운 보석이지만, 진정한 가치는 그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변치 않는다는데 있다. 1년만에 폐기되어야 할 디자인에 우리는 얼마를 쓴 것일까? 디자인을 기능적으로만 바라봐서도 안되겠지만, 효용성이 고려되지 않을바에야 차라리 ‘예술했다’ 말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유비쿼터스 거리’ 보다 ‘지속가능한 거리’ 를 꿈꿨으면 좋겠다.
망각의 공간
“‘강남역’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이 같은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얘기한다. 누군가는 샤넬의 향수, 샹스가 강남역 거리를 채운다고도 하고 어학원이 많아져서 학원가로 변해버린 것 같다고도 하고 “단코” 와 ” 딥하우스” … 무도장이 유행하던 강남역을 떠올리기도 한다. 콩다방이나 별다방 등 브랜드 커피숍이 들어오기 전,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을 추억하고 지오다노 자리의 타워레코드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유흥, 학원, 상가, 종교…. 없는 것 없이 이것저것 한 데 뒤엉켜 돌아가고 있는 곳. 특출난 데도 없지만 뭐하나 빠지는 것도 없는 곳.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은 많지만 애정은 없는 공간. 그럼, 사람 없는 강남역엔 무엇이 있을까?
지난 2004년 7월에 개통된 버스중앙차로, 이곳엔 “사망사고 발생장소” 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강남역 복판의 새빨간 팻말 앞을 수없이 지나다녔지만 오늘에서야 그 존재를 확인한다. 인파 속에 가려져 있었던 것인지, 우리 스스로 망각한 것인지… 강남역은 망각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것 같다. 유행과 함께 매일매일 변화가 거듭되는 곳. 많은 사람이 찾지만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곳. 그 이유를 저 팻말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망각!
내일신문 김성배 기자의 2005년 11월 7일자 기사를 보면,
- “버스중앙차로제 시행 이후 교통사고 사망자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한 3개 노선의 경우 전년대비 사망자 수가 15명에서 27명으로 늘어났다. 일반 교통사고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교통량이 적은 시간대에 전용차로를 달리는 버스의 ‘곡예 운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경찰은 사고예방을 위해 서울시에 ‘정류장에서 속도를 줄이기 위해 도로 바닥을 돌출식으로 포장하고, 정류장 인도쪽에 울타리를 칠 것’을 권고했다.”
2007년 12월 18일, 문화일보 조민진 기자의 “서울 교통사고 다발지역 6곳 살펴보니…” 라는 기사에서는
- “버스전용차로가 불법 유턴 유발 = ‘강남교보타워사거리(사고 60건, 사상자 79명)’나 ‘중곡동 교차로(사고 59건, 부상자 100명)’는 버스전용차로로 인해 불법 유턴과 좌회전차량의 신호위반 등이 잦아져 사고가 늘어나는 경우. 강 팀장은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생기면서 유턴이 아니라 피턴을 해야 한다”며 “그러나 차량 운전자들 중에는 피턴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불편하다보니 불법 유턴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스중앙차로제가 시행되던 당시만 해도 이에 대한 불만과 관심은 지대했다. 누구나 한번쯤 그 불편을 체험했을테니까 말이다. 시행 6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나? 버스중앙차로제가 바꿔놓은 강남역에 대해 생각해볼 새도 없이 삼성타운이 들어섰고 신논현역이 개통했다. ‘U-street’ 라는 디자인 거리를 깔았고 개당 2억원의 미디어폴을 22개 심었다. 도로의 모든 시설물이 서울시 디자인 사업에 맞춰 정비되었고 마지막으로 그 한가운데에 빨간 팻말을 달았다. “사망사고 발생장소”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강남역을 ‘사람 많아 복잡해서 싫다’ 고만 한다. 강남역을 디자인의 거리라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강남역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저 멀리서 뛰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언덕 너머로 사라져버린 상대를 쫓을 기운도 없이 그늘 아래 주저 앉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12차선의 도로 한복판에서 버스가 선다. 건널목에 서서 좌우를 돌아본다. 어느쪽으로 건너건 인파에 묻힐 것이다. 선택만 남았다. 서초동? 역삼동? 아니면, 빨간 팻말 아래 주저 앉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