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은 우리에게 어떤 장소로 기억되고 있을까? 경복궁, 미술관거리, 기무사, 맛집, 데이트 코스, 북촌 한옥마을, 정독도서관…. 많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중학생때 미술선생님의 손을 잡고 국제갤러리에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삼청동을 접했고 10년이 지난 지금, 길었던 학창시절을 빠져나왔지만,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 데려가 준 그 자리, 삼청동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문뜩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 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스쳐가는 일상, 기록하고 싶은 장소

담배가게 주인 ‘오기’의 취미는 1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스크랩하는 것이었다. 영화 속 인물이지만 오기의 취미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담배가게 주변의 일상이 사진을 통해 매일같이 일기처럼 기록된다. 장소에 대한 기억이 오랜동안 관찰되고 기록된다는 사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기는 사람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메우는 풍경을 주인공으로 쓰여진다. 그 거리는 따사로운 태양빛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비로 젖거나 하얀 눈으로 덮이기도 하고 때론, 행인들의 일상이 채워지기도 한다.
오기의 장소에 대한 기록은 일상을 담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 일상적 공간으로 읽혀진다는 느낌을 받았고, 오기가 담배가게 앞을 기록했듯, 이젠 일상으로 기억하게 될 삼청동으로 출근하는 첫날, 삼청동 어느 한 귀퉁이를 매일같이 사진에 담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한 해가 넘어가는 동안 매일 같이 같은 길을 따라 출근하면서도 나약한 의지와 시간을 탓하면서 기껏 남긴 것은 10장 내외다. 하지만 하루하루 삼청동의 일상 안에서 눈으로 찍고 다닌 사진들은 조금씩 변해가는 삼청동을 기억하고 있고,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변해가는 삼청동
관광 온 외국인들,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는 사람들, 사진동호회 출사팀, 북촌탐방 코스를 따라가는 사람들, 영화/드라마/CF/쇼핑몰 등 일하러 나온 촬영팀, 갤러리를 찾은 사람들, 영화를 보러 나온 사람들, 단지 걷고 싶어 나온 사람들…. 수 많은 사람들이 삼청동을 메운다. 이들에게 삼청동은 어떤 곳일까? 카페가 많고 구두가게도 많고 와플 가게와 와인바들이 가득한, 트렌디한 거리? 아니면 북촌마을과 경복궁 사이의 갤러리 많은 문화공간? 물론, 어떤 것이든간에 삼청동은 이미 특별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고, 그래서 사람이 몰리는 명소(?)로 변해간다. 그러나 외지인으로 시끌벅적해질수록 이곳 본연의 일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10년전만 해도 이곳은 서울의 한 작은 마을이었을 뿐이었다. 작은 구멍가게도 있었고, 약국과 병원, 미장원도 있었지만 그 흔적들마저 사라지고 있다. 눈치 빠른 장사꾼들이 모여들면서 이 작은 마을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트렌디 카페 하나가 자리를 잡자, 너도 나도 자리를 얻어서 카페를 연다. 연립주택의 1층은 돈이 몰려 자극적인 프로그램들로 가득차고, ‘여기 분위기 좋아요!’ 하면서 손짓을 한다.
떡볶이 파는 쌀집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쌀집이 두 군데 있는데 이곳 역시도 자본의 물살에 못이겨 떡볶이집을 겸하게 되었다. 1차로 쌀을 팔고, 그걸 가공해 쌀 떡볶이를 판다니 꽤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하다. 식혜도 직접 만들어 판다. 삼청동이 이제 작은 마을이 아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땅의 가치는 올라갔고 작은 마을에 쌀집은 떡볶이를 팔고 식혜를 내놔야 겨우겨우 그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될만한 장소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들어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쌀집 아주머니께 이곳에 자리를 잡게된 계기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여쭤봤더니 “명동과 무교동은 땅이 너무 비싸 쌀집이 들어갈 틈이 없었고 그나마 가까운 삼청동에 쌀집이 모여 있어서 시작하게 됬지만 이제 여기도 유명해져서 일을 안할 수는 없어 떡볶이 팔면서 이어가고 있는 것” 이라고 말씀하신다. 자본은 장소의 성질을 변하게 하고, 돈을 기준으로 공간의 순위를 정해버린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작은 동네의 일상은 이제 자본의 힘 앞에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처럼 건설이 경제의 기반으로 이야기되는 ‘토건국가’에서 장소의 의미는 인스턴트처럼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어느 순간 사라지고 또 생겨나길 수도 없이 반복하는 자본의 프로그램들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마치 유행성 독감을 앓고 있는 듯한 이 거리의 풍경이 너무도 힘겨워 보인다. 돈으로부터 옮아온 바이러스가 삼청동의 쌀집과 거리, 이 도시 곳곳으로 퍼져간다. 그리고 어둠이 깔린다.
삼청동의 새벽을 본적이 있는가? 고담의 도시다. 일상의 흔적은 자본의 물결 속으로 쓸려가버렸고 이곳을 점령한 상점들의 네온간판이 꺼지고 나면 인적 없는 유령도시로 변해버린다. 온갖 쓰레기와 악취로 가득찬 난지도.
잃어버린 것과 찾아야 할 것
원래 삼청동의 이름은 도교(道敎)의 태청(太淸)·상청(上淸)·옥청(玉淸) 3위(位)를 모신 삼청전(三淸殿)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삼청전의 제사는 소격서(昭格署)에서 맡았다. 다른 유래로는 산과 물이 맑고, 인심 또한 맑고 좋다고 하여 삼청(三淸)이라고 하였다 전한다.
혹시 구둣가게가 많아서 혹시 예전부터 짚신, 구두 장인들이 들어와 살았던 곳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다. 아직 어떠한 고증학적 자료도 찾지 못하고 있는 중에, 내가 일하고 있는 설계사무소 소장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자그마한 스케일의 한정된 땅과 높은 가치 속에 보관하기 용이한, 되도록이면 작은 악세사리와 구두가 주를 이루게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시다. 수긍되는 이야기다. 특히 여성 손님의 비율이 높고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많은 거리이다 보니 온통 그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결국 역사적으로 이어지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삼청동이란 곳은 어떤 장소인가?
그래서 나는 삼청동에서 산을 느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신령스러운 산이 많아 오래 전부터 산을 종교로 신봉하는 산악숭배 사상이 다른 민족보다 유난히 발달해 왔다. 산의 정상은 높이 솟아 있고, 항상 엄숙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안개와 구름이 산허리를 둘러싼 모습, 골짜기에서 들려 오는 기묘한 소리, 그리고 산울림 등은 산이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는 곳임을 느끼게 한다. 삼청동에서 북악산과 인왕산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경복궁의 동북쪽, 삼청동의 작은 마을은 인왕산과 북악산의 기운을 그대로 전해 담고 있다. 지금도 골목 곳곳을 비쳐주고 있는 삼청동 자연의 풍광은 분위기 좋은 카페와 반짝반짝 빛나는 구둣가게 보다 더 진실돼 보인다. 당장 포탈 싸이트에 삼청동이란 검색어를 쳐 보라. 온갖 맛 집, 옷 집, 데이트코스, 이쁜구두 이야기들 뿐이다. 이미지를 찾아봐도 자극적인 사진들로 가득하다. 상점들은 복제된 이미지로 도배되어 예찬되고 있다. 삼청동에서 느껴지는 것들 속에 나는 다시 한번 인왕산과 북악산을 강조하고 싶다. 하늘이 높은 가을에 삼청동에 와서 북악과 인왕을 느껴보기 바란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카페에 앉아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시길 바란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고 의미가 치환되지 않는 장소로 남길 바란다.
나에게 삼청동은 산 아래 작은 부락으로 남겨졌으면 좋겠다. 10년전 미술선생님이 보여준 그 때의 모습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