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日常史 취향 개발 프로젝트

호주 사막에서 폐차의 흔적을 따라 가다 서기를 반복한 몇 시간 뒤, 마지막 노란색 차 앞에서 우리는 멈췄다. 바람과 비, 모래를 맞으며 그곳에서 변화되어가던 날것 그대로의 폐차와 달리 인위적으로 가공된 느낌이 물씬 풍겼다. 트렁크 부분이 땅속에 꽂혀 있는 노란색 차엔 어디로 얼마나 가면 휴게소가 나온다는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고, 그 위에는 이런저런 낙서가 휘갈겨 있었다. 지루하고도 위험한 사막 길에 준비된 작은 위트 같기도 했다. 차를 두고 떠난 이의 마음을 위로하듯. 너의 발이 되어주던 친구가 지금 여기에서 온 힘을 다해 기다리고 있다고 누군가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고장 난 자동차를 버리고 살아남기를 택한 사람들은 그 순간 홀가분했을까? 삶의 이치를 겸허히 받아들였을까? 그래서 세상을 보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생과 사의 기로에 선 사람이야말로 진짜를 위해 군더더기를 던져버릴 절호의 기회를 만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새로이 보이는 경이로움도 있겠지. 짐 하나 버리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묵혀둔 마음을 버리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정말로 버릴 수만 있다면, 해내기만 한다면, 내가 만날 수 있는 진짜 나는 놀랍도록 빛이 날 것이다. 마치 뜨거운 물에 묵은 때를 벗겨내는 것처럼.

루이넨루스트 Ruinenlust
독일어로 '폐허(Ruinen)'와 '쾌락/유희(Lust)'가 결합한 단어로, '폐허에 대한 매혹' 또는 '폐허를 보며 느끼는 미적 즐거움'을 뜻함. 서구 미술사와 문학에서 유서 깊은 인공 건축물이 무너지고 자연에 동화되는 과정을 보며 느끼는 낭만주의적 감정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

루이넨루스트는 과거에 대한 단순한 감상이나 슬픔이 아닙니다. 기능과 수명을 다한 콘크리트나 고철 덩어리가 자연의 풍화 작용과 만나 '엄숙함'을 내려놓는 순간입니다. 단단하던 구조가 느슨해진 틈을 타 여행자들의 낙서, 안내 표지판 같은 대중적 코드들이 덧입혀지면서, 폐허는 오히려 대중과 가장 가깝게 소통하는 생동감 넘치는 장소로 재탄생합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네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의 라틴어. 고대 로마에서 전쟁 승리 후 퍼레이드를 할 때 장군의 뒤에서 노예가 외치던 말에서 유래했으며, 미술사에서는 해골, 모래시계, 꺼진 촛불 등을 통해 삶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경고하는 상징적 장치로 쓰임.

종교적이거나 허무주의적인 경고가 아닌, '구조적 비움'의 계기로 해석합니다. 생존이 걸린 사막의 길 위에서 가장 비싸고 무거운 물질인 자동차를 버려야만 하는 순간은, 인간이 죽음 앞에서 모든 군더더기를 던져버려야 하는 최종 국면과 닮아 있습니다. 사막의 노란 폐차는 현대인들이 집착하는 문명과 소유물이 결국 유한하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시각적 단서입니다.

소멸 消滅
형태나 현상, 사라져 없어짐. 또는 물질이나 에너지가 고유의 성질을 잃고 다른 상태로 전환되거나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현상

소멸을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한 파괴'가 아니라, 완벽히 비워낸 뒤 본질이 발현되는 순간입니다. 기능할 때는 인간의 발이었던 자동차가 소멸의 단계를 거쳐 멈춰 서 있을 때, 비로소 그 자체로 사막의 풍경을 완성하는 예술적 오브제이자 이정표가 됩니다. 소멸은 진짜 본질을 마주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질문들

완벽하고 깨끗한 새 공간보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낡은 장소나 녹슨 사물에 마음이 더 쉽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빈틈없이 정돈된 인공적인 건축물이나 새 제품은 우리에게 심리적 긴장감을 줍니다. 반면,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공간이나 사물은 인위적인 통제가 해제된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대중에게 묘한 해방감과 미적 안도감을 선사합니다

낯설고 황량한 환경 속에서 마주하는 오래된 물건, 그리고 그 위에 남겨진 낙서나 손때 같은 흔적은 우리에게 뜻밖의 '인간적인 온기'를 전달합니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지나간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흔적을 통해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두려움을 지우고, 유대감과 안도감을 얻게 됩니다.

사실들

전문가 의견 / 비평

캐딜락에 관한 정서와 추억이 1974년 ‘앤트 팜(Ant Farm)’ 그룹에 의해서 예술 작품으로 탄생했다. 텍사스주 북단을 지나는 미국의 문화 역사 도로 ‘루트 66’에 있는 ‘캐딜락 랜치(Cadillac Ranch)’. 벌판 한가운데에 1949년부터 1963년 사이에 생산된 각기 다른 캐딜락 모델 열 대가 한 줄로 일정하게 서 있다.

한마디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관성이 멈추는 순간, 비로소 삶을 지속하기 위해 남겨야 할 것을 찾을거예요.

개인화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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