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y? 日常史 취향 개발 프로젝트

조언이 필요한 순간은 나이와 역할을 불문하고 나를 방문하고 있다. 누군가는 충고로, 또 누군가는 흡수로, 누군가는 해소로, 누군가는 해결로, 다양한 온도의 조언을 필요하기도 하고 또 건네받으며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충고라는 것도 정답이 있기보다,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 성향, 취향으로 선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게 조언이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가보지 못한 길이거나, 처음 겪어보는 일이거나, 관계의 막막함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거나 등등. 알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최선의 선택에 대한 부담감이 뭉뚱그려진 마음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조언이란 것이 힘든 일이건 좋은 일이건, 때론 굵직하게 또 때론 사소하게 내 복잡한 생각을 타인에게 조금은 나누고 싶은 내 이기적 욕구는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구석구석 내포된 내 감정을 알 리가 없고, 매 순간 살아낸 내 상황을, 또 그때마다 어떤 감정을 남기거나 지우며 지금의 내가 되어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저마다 자신만 보고 느끼는 것들로 한 경험이 다인지라,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마음이 누적되어 있을 거다. 가끔 사람들은 ‘역지사지’라는 말로 조언을 건네곤 한다. 하지만 세상엔 그 입장이 되어볼 수 없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면, 평생 미혼이나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아 모른다는 말은 소통의 의지를 잃게 한다. 나 역시 비슷한 대화에서 입을 닫아버린 적이 여럿이다. 

저마다 느꼈던 좋은 조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진다. 나누다 보면 누군가에게 내가 조언을 건네는 입장이 될 때 조금은 더 어깨를 토닥여줄 방법을 습득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내가 만난 조언의 모습 중 최고를 꼽으라면, “나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로 시작한 모습이다. 그의 조언은 조금은 해결에 도움을 주고 싶고, 혹여나 질책으로 들릴까 하는 염려를 품었다. 그래서 듣는 이가 자신의 경험을 거울삼아 지금을 보게 하는 방법 같았다. 그의 방법은 매번, 내가 나에게 손가락질하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보게 해주었더랬다.

그의 시작은 마지막도 같았다.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그러니까 너도~”라며 해결책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내가 해보니까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되더라.”도 아니라, 고민의 씨앗을 보게끔 마무리했다. 그래서 자주 본인이 비슷한 경험에서 그 방법을 선택했던 이유로 끝을 맺어, 내가 고민했던 이 상황의 근본을 들여다보게 한달까. 쉽게 말해, 남의 일이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한 다음, 나를 스스로 거울 앞에 세우는 방식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의 조언을 선호한다. “내가 겪은 이 상황에서 이런 방법으로 해결했었는데, 그 이유가 이거였어요.”라는 말은 내가 왜 이 고민을 하고 있고, 이 상황에서 내가 바라는 바는 무엇이며, 왜 그걸 바라는가를 질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방식을 통해 내게 좋은 조언에 대한 정의가 새겨졌다. 본인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질문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에게 매번 같은 방법으로 조언을 건네고 있지는 않다. 여전히 서툴게 조언을 건네고 받으며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의 모습처럼 좋은 질문으로 조언을 채우는 날이 올 거란 좋은 느낌이 드는 것만으로도 꽤 희망적이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당신이 경험한 최고의 조언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당신이 건네는 조언은 같은 모습인가?

공감 격차 共感 隔差, Empathy Gap
자신이 처한 감정이나 신체적 상태가 상대방과 다를 때, 타인의 마음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거나 예측하지 못하는 인지적 한계

각자가 살아낸 감정의 온도와 맥락을 완벽히 공유할 수 없음에도, 자신의 기준을 보편적 정답으로 착각하여 건네는 '역지사지'식 조언과 소통의 단절.

질문들

우리는 왜 누군가의 조언 앞에서 때로 소통의 의지를 잃는가?

조언자가 자신의 경험과 기준을 보편적 정답으로 전제할 때, 조언은 평가나 주입이 된다. 타인의 누적된 감정과 환경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입장을 바꿔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방식은 개별적 맥락을 지워버린다.

"나는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서사적 거리두기는 듣는 이에게 질책이나 열등감 없이 상황을 객관화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제공한다.

좋은 조언이란 타인의 문제에 완성된 설계도를 내미는 것인가, 스스로 작업할 공간을 놓아주는 것인가?

좋은 조언은 옳고 그름의 기준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내가 왜 이 고민을 하는가", "내가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를 스스로 질문하게 만드는 인지적 구조물이어야 한다.

개인화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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